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7ㆍ4 전당대회 당선 일성으로 “당내 계파를 없애겠다”고 호기있게 말했다. 그러나 18일 마무리된 당직인선 결과는 그 선언이 무리한 호언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사무총장은 홍 대표가 자신의 몫을 관철했고, 제1ㆍ2 사무부총장은 친박ㆍ 친이계가 차지했다. 여의도연구소장은 소장파 몫으로 돌아갔다. 계파 해소는커녕 철저한 계파 안배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언제 계파를 해소하겠느냐”(나경원 최고위원)는 힐난이 터져 나온 건 당연했다.
당 대표 전의 홍준표와 당 대표 홍준표는 많이 다르다. 홍 대표는 작년 7월 전당대회에서부터 계파 타파와 당 화합을 외쳤다. 그러나 이번에 유승민, 원희룡 최고위원 등의 격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표가 사무총장 하나도 못 챙기냐”며 자기사람 김정권 사무총장을 밀어붙였다. 안상수 대표시절 경선캠프 인사들을 당 요직에 임명하려 하자 “안 대표의 독선이 도를 넘었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때와는 정반대다.
취임 후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최고위원들에게 이래서야 어떻게 당을 끌어가느냐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하지만 안상수 대표체제에서 홍 최고위원은 더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 했다고 보기 어렵다. ‘홍준표 몽니’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안상수 전 대표는 요즘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때마 홍 대표가 당하는 것을 보며 “어떠냐”며 고소해 할지도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려 하자 한나라당은 대선을 앞두고 코드 인사는 안 된다며 강력히 반발, 결국 무산시켰다. 물론 홍준표 의원도 그 대열에 섰다. 하지만 홍 대표는 이번 권재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내정에“법무행정을 하는 자리에 민정수석이 못 간다는 것은 잘못된 전제”라며 전혀 다른 논리를 폈다.
홍 대표는 최고위원 시절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비주류ㆍ변방 정신이고 마이너리티의 치열함”이라며 “보수개혁론을 기치로 걸고 당 개혁을 위해 신보수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했다. 그랬던 홍 대표라면 뭔가 달라야 한다. 하지만 비주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한 뒤 그가 보이는 모습은 자신이 비판해왔던 대상들과 별단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의 입장 바꾸기는 신물 나게 봐왔다. 한나라당은‘잃어버린 10년’야당시절에는 그렇게 반대하던 국회 직권상정과 강행처리 또는 다수결 처리가 옳다고 주장한다. 코드인사 낙하산인사에 대한 입장도 정반대로 바뀌었다. 야당 때 취했던 입장과 여당이 된 뒤의 입장이 똑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목전의 이익을 위해 원칙을 무너뜨리고 비난해마지 않던 행태를 답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람들은 홍 대표가 전개하겠다던 신보수 운동이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갔다하는 천박한 보수가 아닌 원칙 있는 보수이기를 기대했다. 요즘 그 기대가 흔들리고 있다.
홍 대표는 야당이 제기한 전당대회 자금 의혹에 관한 질문을 하는 여기자에게 “그런 걸 왜 물어, 진짜 맞는 수가 있어”라고 윽박질렀다. 터무니 없는 의혹 제기에 매우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DJ 저격수 등을 자임하던 야당의원 시절 홍 대표도 많은 헛발질을 했다. DJ 가족의 수조원 비리설, 여성 탤런트들의 정치인 성 상납설, 노무현 정권의 수천억원 당선축하금설 등 엄청난 의혹들이다. 하지만 증거라고 제시한 양도성예금증서(CD)가 가짜로 드러나는 등 무리한 폭로였음이 분명해져 스타일을 구겼다.
그런 홍 대표라면 자신을 상대로 한 의혹 제기에도 좀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옳다. ‘잘못 쏘면 자신이 죽는다’는 어설픈 저격수론을 펴기보다는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 풍토를 경계하고 자성하는 모습이 더 필요하다.‘때와 자리를 가리지 않고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서민 정치인’ 홍 대표가 비주류ㆍ변방의 치열함과 원칙을 지키면서 주류ㆍ중심의 큰 정치인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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