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에 극명히 갈렸던 친일과 반일.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조선 귀족들의 삶은 윤택했다. 반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재산과 목숨을 내던졌던 독립운동가들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이들의 삶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2일 밤 10시에 KBS1에서 방송되는 '시사기획 10'에서 친일과 항일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과거와 후손들의 현재를 병치해 보여줌으로써 대한민국의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본다.
5년 전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친일 행위자 160여명의 재산을 국고 귀속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손들은 조상의 친일 행위에 대해 반성하기보다 소송 대열에 뛰어들었다. 현재 친일 재산 환수법 자체가 위헌이라며 60여건의 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박병대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것도 친일 재산 문제였다. 박병대 대법관이 고등법원 판사 시절, 친일 행위자 이해승의 후손이 국가에 귀속된 재산을 돌려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이해승 후손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박병대 대법관은 관련 법이 '한일합방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자'로 규정하는데 이해승이 친일한 것은 맞지만 한일합방 이전에 친일한 증거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10일에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우당 이회영 일가가 전재산 600억원을 처분해 마련한 돈으로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독립군 양성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이회영은 일제의 고문 끝에 1932년 사망했고, 조선 최대 부호였던 둘째 이석영은 1933년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이석영의 두 아들도 모두 중국에서 사망해 결국 절손이 되는 비극을 당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