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53ㆍ사진)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발동한 걸까. 그는 "금융업계에서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이런 자신의 다짐을 실천하려는 듯 최근 해외 네트워크 구축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대만 타이완라이프자산운용을 인수한지 불과 한달 만인 14일 캐나다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를 또 인수한 것이다. 이로써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해외법인은 8개로 늘었다.
박 회장은 3개월 전 업계 최초로 ETF의 총보수를 기존의 반값(연 0.15%)으로 파격 인하했다. 이는 박 회장이 '해외 ETF운용사 인수'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에 앞서 국내 시장을 더 키우기 위해 선수를 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의 전략대로 최근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우리자산운용을 제치고 국내 ETF시장 2위로 올라섰고, 경쟁사들도 "오너(박 회장)의 힘"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다.
무르익는 '글로벌 플레이어'의 꿈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03년 홍콩법인을 시작으로 인도(2006년), 영국(2007년), 베트남ㆍ미국(2008년) 등 5개국에 해외법인을 세웠다. 올 들어선 대만과 캐나다 운용사의 지분을 인수해 법인을 출범시켰다. 박 회장은 "5년 내 글로벌 운용자산 규모를 100조원까지 늘릴 계획인데, 이중 해외 운용 규모가 절반에 이를 것"이라며 추가 인수ㆍ합병(M&A) 의지를 내비쳤다.
박 회장이 내세우는 글로벌화는 '다양화'가 핵심이다. 그간 주식 및 채권에 투자하는 운용사를 설립ㆍ인수해 오다가, 이번에 캐나다 ETF운용사를 인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ETF는 특정 주가지수를 펀드로 만들어 상장시킨 뒤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인데, 수수료가 싸고 실시간으로 편입 종목을 알 수 있어 인기가 좋다"며 "미래에셋이 글로벌시장에서 연 30%씩 성장하는 ETF 시장을 공략한 건 탁월한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해외로의 영역 확대는 박 회장의 투자원칙과 맥을 같이 한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박 회장은 분산투자를 통한 위험관리를 원칙으로 삼는다"고 강조한다. 잇따른 해외진출이 업계에선 공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박 회장 입장에선 상품과 고객층을 다양화해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금융위기 후 해외진출 승부수
박 회장은 금융업계에 등장할 때부터 늘 '최초'와 '신화'를 몰고 다녔다. 1991년 서른 세 살 나이에 증권업계 최연소 지점장(옛 동원증권)이 됐고, 98년엔 자기 이름을 내건 국내 최초의 뮤추얼펀드 '박현주1호'를 내놨다. 또 2003년 국내 첫 적립식펀드를 내놓은 데 이어 2005년엔 첫 해외투자펀드를 출시했다.
박 회장이 궁지에 몰린 건 미래에셋 창업 10년째인 2007년 내놓은 인사이트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반토막 수익률을 내면서부터. 2009년 이후 무려 20조원 넘는 자금이 미래에셋 펀드에서 빠져나갔다.
이런 위기 속에서 박 회장이 승부수를 띄운 게 바로 해외 진출이다. 외견상으론 일단 성공을 거둔 듯하다. 2000년대 초ㆍ중반만해도 국내의 해외펀드 시장을 피델리티자산운용, 슈로더투신운용 등 외국계가 장악했지만, 지금은 미래에셋이 23.5%의 점유율(금융투자협회ㆍ14일 기준)로 독보적인 1위이다.
하지만 커진 몸집에 비해 수익률은 신통찮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미래에셋의 올해 상반기 수익률은 국내펀드 19위(4.06%ㆍ74개), 중국펀드 5위(-1.61%ㆍ41개), 인도펀드 5위(-13.99%ㆍ6개), 러시아펀드 2위(2.99%ㆍ7개)에 머물렀다.
업계 관계자는 "펀드 규모가 크면 시장 파급력도 커져 펀드매니저가 주식을 마음대로 매매하기 힘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현지 운용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단기간에 시장정보 수집과 고객유치 확보에 성공해야 한다"며 "향후 미래에셋 해외 법인들의 성과에 따라 그룹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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