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이 고삐 풀린 듯하다. “2,000원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언급을 비웃듯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인위적 가격관리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정부가 기름값 인상의 주범으로 지목한 정유사와 주유소도 서로 상대를 탓하기 바쁘다. 최근의 유가 상승이 국제유가 흐름과 어긋나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 대책은 이미 밑천을 드러낸 ‘손목 비틀기’수준에서 겉돌고 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어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주유소 500곳을 선정해 실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유사와 주유소의 ‘진실 논란’시비를 가리기 위한 조사라지만 과거 ‘외제차 구매자 세무조사’ 엄포를 연상시킨다. 단기 효과는 몰라도 지속적 효과는 의문이다.
소비자 운동을 대안으로 삼자는 주장이 잇따르지만 이 또한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 자동차용 연료의 가격 탄력성이 아주 낮아 시장의 자율적 가격조절 기능은 극히 둔하다. 고소득층의 소비야 어차피 논외지만, 중ㆍ저소득층의 생계형 운전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공급자 우위 시장구조가 굳어진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의 유가구조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그 결과의 수용이 전제되지 않고는 달리 근본 대책을 상정하기 어렵다.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유가에서 정유사와 주유소 마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연한 예상만큼 크지 못하다. ℓ당 2,000원인 휘발유 가격에서 둘을 합친 마진은 150원 내외다. 이를 표적으로 삼아봐야 미조정에 그칠 뿐이다.
나머지는 전체 기름값의 42%가 넘는 수입원가와 50%나 되는 관세와 부과금,유류세, 부가세 등 ‘세금’뿐이다. 고환율 정책의 수정으로 수입원가를 낮추거나 세금을 덜어내지 않고서는 유가상승을 제어할 다른 수단이 없다. 수출업계의 실적에 신경 써야 할 지경부나 세수 감소를 메울 대체세원 개발에 나서야 할 기획재정부의 고충을 이해하더라도, 이 만큼 궁한 처지에 이르렀으면 이제 통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