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업이 국제적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기점은 1974년 울산 현대조선소의 출범이다. 하지만 고 정주영 회장도 초기엔 사업 전망을 밝게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정 회장은 “내가 반대를 하니까 하루는 김학렬(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씨가 대통령께서 찾는다는 겁니다. 아이고, 도망이다 하구선 도망갔다가 잡혔지요”라고 회고했다. 우리 조선업의 도약엔 조선업을 중화학공업 육성의 핵심 산업으로 배치한 고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와 강권이 작용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조선소 출범 전 국내 최대 조선소는 국책회사인 부산의 대한조선공사였다. 1만톤급 강선을 만들 수 있는 회사였는데, 창업 이래 적자만 보다가 파산했다. 정 회장의 망설임도 거기에 있었다. 하지만 일단 사업을 시작하자 정 회장은 신화를 일구기 시작한다.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영국 바클레이은행 부행장을 설득해 조선소 건설자금을 조달했다는 얘기도 그 때 등장한다. 기공 당시 10만 GT(용적톤수)급 도크 하나로 시작했으나, 건설 중 확장을 거듭해 준공 땐 최대 70만 DWT(중량톤수)급 배를 건조할 수 있게 됐다.
▦현대조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대우중공업이 옥포에, 삼성중공업이 거제에 조선소를 세운 198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는 조선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리고 10여 년의 각고 끝에 1993년 수주량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37.8%를 차지해 32.3%에 그친 전통의 조선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하지만 이후 우리나라와 일본이 1위 자리를 두고 각축을 벌이는 동안 중국은 막강한 가격경쟁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을 급속히 파고들었고, 2008년부터는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제치며 수주량 기준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조선업은 아직 저임금, 저가 원자재를 기반으로 범용설계도를 이용해 만드는 벌크선(철광석 운반용 선박 등)이나 8,000TEU(1TEU는 6㎙ 컨테이너)급 이하 컨테이너선 건조에 머물고 있다. 반면 우리는 중국의 추격에 기술력이 필요한 드릴십(해양시추선)이나 8,000TEU급 이상 대형 컨테이너와 LNG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로 나아갔다. 그 결과 올 상반기에 수주량 892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기록해 517만 CGT에 그친 중국을 2년여 만에 다시 제치는데 성공했다. 불굴의 의지와 추진력이 여전히 맥동치는 우리 조선업계의 선전을 축하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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