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내 요식업계가 발칵 뒤집어지는 한 사건이 벌어졌다. 정부가 공인한 딱 7명뿐인 '요리명장' 가운데 두 사람이, 그것도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중형 뷔페 레스토랑(400석)에서 함께 손을 잡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고수(高手)는 고수를 알아보지만, 그렇다고 결코 한 공간에는 머무를 수 없는 법. 화합하기 힘든 자기 만의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자존심 때문이다.
하지만 두 요리명장들은 달랐다. 이상정 명장과 정영도 명장은 서울 강남역 부근 뷔페 레스토랑 비바루체에서 각각 고문과 조리총괄상무로 현재 10개월 째 동거 중이다.
동갑내기(59세)인 이들은 30년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둘 다 프랑스 요리를 주 전공으로 삼아 2002년(이 고문), 2004년(정 상무)에 잇따라 요리 명장 칭호를 받았다.
1970년대초 이들은 "먹고 살 길을 찾자"는 생각에 고향을 떠나 서울의 호텔식당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30년 가까이 서울 시내 특급 호텔과 63시티 등에서 조리과장, 부장 등을 두루 거치며 국내 양식요리의 최고봉으로 불렸다.
두 사람은 그러나 이후 조금은 다른 길을 걸었다. 이 고문은 부산 영산대학교 부교수를 시작으로 서정대, 청운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활약하며 박사 학위까지 취득, 실무와 이론을 겸비하게 됐다. 이에 비해 정 상무는 계속 호텔업계에 머물면서 조리장 출신으론 사상 첫 특급호텔 임원(이사)이 되고, 동탑산업훈장까지 받는 명예를 안았다.
그런 두 사람이 손을 잡게 된 데는 비바루체 손문선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손 대표는 처음 이 고문에게 조미료를 쓰지 않고 전남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의 천일염 만으로 음식 맛을 내자는 '무모한' 제안을 했다. 이 고문은 "이미 뷔페 레스토랑이 포화 상태인 강남 지역에 새 레스토랑을 여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봐서 반대했다"며 "하지만 건강한 맛을 살려보자는 손 대표의 신선한 시도에 맘이 끌렸다"고 말했다.
정 상무를 영입한 이는 이 고문이었다. 사실 정 상무는 비슷한 시기에 대기업으로부터 임원으로 스카우트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대기업에선) 경영에 간여해 달라고 제안했지만 아직 나는 현장에 있을 때라는 판단에 거절했다"며 "오갈 데 없는 이 친구를 저 사람(이 고문)이 구해줬다"며 웃었다. 이어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40년 요리 인생의 '제 2장'을 열 수 있는 새로운 시도로 여겼다"며 "기존 메뉴라도 천일염으로 맛을 내니 사실상 새 메뉴를 개발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은 뭉치자 마자 한창 어린 후배들과 새 맛 만들기에 몰두했다. '바다의 인삼'이라는 함초를 활용한 메뉴(함초 초밥, 함초 녹차 아이스크림 등)가 대표적인 예. 하지만 아무리 명장이라도 새 맛을 시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천연의 맛을 살리려다 보니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현재 비바루체와 강북의 웨딩홀 라루체 두 곳의 식재료 값만 월 5억원 가량. 정 상무는 "일반적으로 유명 레스토랑이나 호텔 식당은 식재료 값이 음식 값의 40~45% 정도인 반면 이 곳은 70~75%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비경제적 재료조달'을 감수하는 이유는 한 하나. "최고의 재료만으로 최고의 음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최고의 요리사라고 해서 무조건 최고의 음식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최고의 재료와 최고의 손맛이 만날 때 비로소 최고의 음식이 탄생한다"는 것이 환갑을 앞둔 두 명장이 40년 요리인생에서 얻은 교훈이기 때문이다.
이 고문은 "최고를 지향하며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식당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는 것은 비용 부담을 못 견디고 저렴한 식재료를 찾기 때문"이라며 "맛의 변화는 고객들이 누구보다 빨리 알아 차린다"고 강조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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