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권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이 늘고 있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대졸 이상 고학력자들에게 밀려 자취를 감췄던 고졸 행원이 15년 만에 은행 창구로 속속 복귀하고 있는 것이다.
18일 금융계에 따르면 기업은행과 국민은행, 신한은행에 이어 산업은행이 올해 하반기 뽑을 예정인 신입행원 150명 중 3분의 1을 고졸로 채용하겠다는 파격적인 계획을 내놓았다.
김영기 산은 수석부행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하반기 150명 규모의 신입행원 공개채용 때 특성화고 등 고졸과 지방대 출신을 각각 50명씩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산은의 고졸 출신 행원 채용은 1996년 이후 처음이다.
산은 측은 고졸 채용을 확대한 배경에 대해 ▦취업과 학업의 병행을 통한 성장동력 확충 ▦수도권과 지방 간의 취업 불균형 해소 ▦민영화에 대비한 수신기반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은 일단 계약직 위주로 뽑는 고졸 사원들에게 일을 병행하면서 정규대학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소정의 대학과정을 마친 행원에게는 대졸 출신과 동일한 직무경로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 산은은 또 지방대 출신 채용 비율을 장기적으로 50%까지 늘릴 계획이다.
앞서 국민은행이 4월 특성화고 및 마이스터고 출신 8명을 채용한 것으로 시작으로 대구은행이 같은 달 20명의 창구전담 직원을 뽑았다. 이어 6월 기업은행과 신한은행도 특성화고 출신으로 각각 20명과 5명을 채용했다.
이 같은 고졸 채용 바람은 하반기에도 이어져 부산은행이 이달 중 10명 안팎을 선발할 예정이며, 농협과 광주은행도 각각 30명과 10명을 채용키로 했다. 기업은행은 상반기의 2배인 40명을 하반기에 추가로 뽑을 계획이다. 시중은행장들이 11일 은행연합회 정례모임에서 고졸 채용을 확대하기로 뜻을 모은 만큼,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금융권 안팎에서는 고졸 채용붐이 일시적 유행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근의 고졸 채용 확대는 학력 차별에 대한 언론의 문제제기와 정부의 권고에 편승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대졸은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고졸만 계약직으로 뽑는다면 이 역시 차별"이라며 "학력 인플레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려면 승진과 임금을 차별하는 유리천장을 깨뜨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