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토론회의 전형이었다. 겉으로는 머리를 맞대고 분위기를 잡았지만 원론에서 맴도는 형식적인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곪아 터진 해병대의 악습을 고치기엔 여전히 많은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18일 경기 김포시 월곶면 해병2사단 필승관에서 2시간 넘게 열린 병영문화 혁신 대토론회는 한 자리에 모여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자리였다. 강화도 총격사건의 파장을 감안해 장군과 병사, 군인과 민간인 200여명이 모인 사상 초유의 자리였지만 심도 있는 토론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일부 전문가는 시간부족으로 마이크를 잡아보지도 못했다.
토론의 화두는 해병대원 4명의 목숨을 앗아간 왜곡된 기수문화였다. 당연히 각자가 바라보는 기수문화의 문제점과 개선책이 다양한 관점에서 중점적으로 논의됐어야 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기수문화의 장단점을 고루 언급하며 산술적인 균형을 맞추는데 그쳤고,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은 좀체 찾기 어려웠다.
해병1사단 신현진 상병은 “오도된 기수문화를 바로 잡기 위해서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기수문화가 악습이 아닌 아름다운 전통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6여단 김기완 상사는 “해병대의 전통이 위계질서를 위한 단순한 악습으로 변질됐다”며 “간부들이 병들의 음성적 지휘를 묵인하거나 방관한 잘못이 크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이상훈 해병2사단장은 “기수문화는 동기애에서 출발하고 전역 후에도 선후배간 전우애를 지속하는 끈”이라며 “이런 기수문화를 올바로 세우기 위해 정신차리고 똑바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해병 출신인 최염순 카네기연구소 대표는 “직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까다로운 상사라 하더라도 전우애가 있기 때문에 바꿀 수 있다”면서 “해병대원은 절대 해병대원을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교육해서 해병대가 걸어온 길을 계속 가야 한다”고 말했다.
타군 병사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해군 김성진 상병과 공군 홍원영 병장은 “우리는 매달 한 기수를 뽑는데 해병대는 두 기수를 선발하다 보니 기수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다”며 “군대에서 기수가 필요하지만 교육을 빙자한 악습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상영 국가인권위원회 사무관은 “입대 15일 차이로 바뀌는 기수가 병영문화의 중요한 틀로 유지되는 게 문제”라며 “공적 채널이 사적 지시의 통로로 악용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구타,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이 해병대의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건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라며 “마치 착한 모범생이던 내 아들이 알고 보니 비행청소년이라는 생각이 든다.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13명이 마이크를 잡았지만 토론시간은 1시간에 불과했다. 대신 토론 전후로 군 지휘부의 강평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었다. 한 참석자는 “아직 군 지휘부의 절박함이 덜한 것 같다”며 “과연 누구를 위한 토론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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