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아이폰 사용자가 제기한 위치정보 수집에 대한 위자료 집행신청을 받아들인 뒤, 제조사인 애플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참가자가 벌써 2만명을 넘어섰다. 소송비용이 1만원대로 저렴해 '밑져야 본전'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집단소송 참가기록을 갱신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소송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 자칫하면 소송 참가자들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변호사 주머니만 불려주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미래로의 김형석 변호사(36)가 개설한 애플 상대 위자료 청구소송 원고인단 모집에 이날 정오까지 2만여명의 아이폰ㆍ아이패드 사용자들이 신청했다.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이번 소송이 매력적인 이유는 소송 비용이 1만6,900원에 불과하다는 것. 적은 돈으로 어쩌면 100만원에 가까운 금액(김 변호사가 받은 위자료 기준)을 받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참가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300만명으로 추정되는 아이폰 사용자들의 10%만 참여해도 30만명이 된다.
소송비용 1만6,900원은 변호사 수임료 9,000원, 부가가치세 900원, 인지대 5,000원, 송달료 등 기타비용 2,000원을 합한 것이다. 10만명만 소송에 참가해도 소송비용은 16억9,000만원, 이 가운데 변호사 수임료는 9억원이 되는 셈이다. 소송에 이기면 변호사들의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승리 보수가 위자료(100만원)의 20%로 책정돼 10만명 소송의 경우, 변호사의 승리 보수만 200억원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소송에서 질 경우 참가자들은 각각 1만6,900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한 것에 그치지만, 변호사는 이기든 지든 큰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집단 소송 경험이 많은 A변호사는 그러나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 드는 인건비와 집단소송을 진행하면서 포기하는 사건 등을 고려하면 폭리를 취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집단 소송을 해도 큰 이득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고 항변했다.
집단소송은 성격상 재판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 원고인단의 신원 및 서비스 가입여부 확인에만 몇 달이 걸린다. 애플 측의 협조가 지연되거나, 가입기간에 따라 위자료 배당이 달라질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소송 장기화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2008년 옥션 고객정보 유출 사건에서도 14만명에 달하는 원고인단의 명단 파악에만 1년이 걸렸다. 같은 해 발생한 GS칼텍스 회원정보 유출 사건도 4년이 지난 올해 6월에야 항소심 재판이 종료돼, 현재 대법원의 최종심이 남은 상태다.
집단 소송이 본격화된 이후에도 참가자들은 수시로 재판 진행 상황과 상급심 진행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통상 집단소송은 수임을 1심에만 한정할 것인지, 3심까지 일괄적으로 맡길 것인지 계약 시 설정한다. 1심만 수임한 경우는 재판 결과에 따라 추가 계약을 맺으면 되지만, 모든 심급에 대해 계약을 맺은 경우 변호인단이 항소를 했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옥션 사건에선 13명의 변호사들이 인터넷 카페를 통해 1인당 수임료 2~3만원으로 14만여명의 원고인단을 꾸렸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옥션의 과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며 잇따라 원고 패소 판결했고, 6명(소송참가자 10만여명)의 변호사가 항소심을 포기했다. 문제는 항소를 포기한 변호사들이 초기 소송단을 모집할 때와 달리 항소 포기에 대한 이유나 향후 절차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은 것. 소송이 장기화되면서 당초 상급심까지 소송이 이어지는 것을 전제로 소송 참가자들이 낸 소송비용이 공중으로 날아간 것이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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