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자영업자 김모씨. 3개월전 차린 인쇄물품 납품업체 운영자금이 부족해 은행, 저축은행, 대부업체까지 돌며 대출을 신청했지만 허사였다. 지난해 직장에서 월급이 나오지 않아 신용카드로 50여만원을 현금서비스 받은 뒤 3개월 연체한 게 화근이었다. 김씨는 "평생 대출을 받아본 적도 없고, 신용불량자도 아닌데 대부업체마저 외면하다니 정말 답답하다"고 말했다.
17일 금융권과 신용정보업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발표한 이후 서민 대출이 크게 경색되고 있다. 아직 정확한 통계가 집계되지는 않았으나, 서민 대출의 큰 폭 감소는 확실하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존 대출이 있는 경우, 일부라도 상환해야만 연장해주는 실정"이라며 "신규 대출 역시 크게 줄어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730만명에 달하는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저축은행 관계자는 "가계부채 연착륙 방안이라는 게 결국 '대출 건전성 강화' 방안"이라며 "금융업체마다 상환능력이 열악한 서민에 대해 신규 대출을 억제하고, 기존 대출에 대해서는 상환을 독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반기 구조조정을 앞둔 저축은행의 경우 신용이 나쁜 개인이나 영세기업을 대상으로 강력한 추심 활동에 나서는 한편, 신규 대출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대출 회수에 실패하면 저축은행이 죽는 판국이라, 대출자의 개별 사정을 봐줄 여력이 없다"고 실토했다.
기존 대출에 대해 연장조치를 받은 경우라도, 이자 상환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저축은행 업계가 앞다퉈 금리를 올리는 바람에 올해 5월 대출금리가 2003년 이후 최고 수준(16.72%)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억원을 빌린 자영업자라면 지난해 5월(12.41%ㆍ1,240만원)과 비교할 경우 이자 부담(1,672만원)이 연간 430만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제도권 금융에 남아 있던 저신용자 상당수가 불법 대부업체나 사금융 등 비제도권으로 넘어가 금융불안 국면이 오히려 확대되는 상황이 우려되고 있다. 실제로 감독 당국의 간접통제를 받는 인가 대부업체는 이미 대출여력이 포화 상태다. 이용 고객과 대출총액이 각각 200만명과 6\7조5,655억원에 달할 정도(지난해말 기준)로 최근 몇 년간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여파와 감독 당국의 옥죄기가 맞물리면서, 6월 이후 대부분 대부업체가 외형 확장에 극도로 신중한 모습이다.
R대부업체의 한 지점장은 "몇 달 전만해도 9, 10등급에 대해서도 돈을 빌려줬으나 지금은 거의 취급하지 않으며, 대출이 이뤄져도 그 액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음성적 사채시장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히 가계부채 대책의 속도조절이나 서민층의 상환능력 강화를 위한 별도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원종현 조사관도 이날 내놓은 '이수와 논점' 보고서에서 "부채의 증가속도를 낮추는 방안과 함께 소득의 증가속도를 높이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권경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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