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주년 제헌절이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지나갔다. 이맘때면 으레 정치권을 중심으로 권력구조 개편을 비롯한 개헌 논의가 고개를 들더니 올해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때문인지 이마저 조용하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큼직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적실성(適實性)을 살피지도 않은 채 헌법부터 걸고 넘어지던 악습이 묽어진 듯해 반갑다. 만든 지 24년이 다 되어 역대 어느 헌법보다 수명이 긴 현행 헌법이 근본규범으로서 넉넉한 품을 자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뿌듯하다.
다만 정치권을 달구고 있는 복지와 분배 논쟁, 특히 포퓰리즘 논쟁과 얽혀 헌법 119조 '경제조항'의 참뜻을 둘러싼 논란이 분분한 것은 옥의 티라 할 만하다. 민주당은 얼마 전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특별위원회'라는 당내 기구를 띄우면서 헌법 119조 2항의 정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또 재벌의 사회경제적 이익 독과점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최근 여당에서도 헌법적 근거로 이 조항을 언급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여야의 이런 자세는 국민의 헌법적 관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헌법 119조 2항은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 시장 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 경제 주체 간 조화를 토한 경제 민주화를 위한 규제와 조정'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가령 정부의 시장 개입이나 규제 움직임에 재계가 흔히 내세우는 '자유시장 경제원리에 반하는 위헌적 발상' 주장의 허실을 짚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질서의 모든 기초를 이룬 듯 과장해서는 안 된다. 2항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는 1항과 조화될 때 그 뜻이 제대로 산다. 자유시장 질서를 기본으로 사회적 시장경제 성격도 띤다는 200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 그대로다.
동전의 양면을 다 보지 않고 한쪽만 부각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념과 노선 싸움에 적당히 끌어 쓸 정도로 헌법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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