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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민 무시하는 모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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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민 무시하는 모피아

입력
2011.07.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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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의 본명은 '상호저축은행'이다. 하지만 어느 저축은행도 간판에 본명을 쓰지는 않는다. '상호(相互)'가 주는 '지역금고'의 이미지가 싫은데다, 고객들에게 '은행'으로 비춰지고 싶은 욕망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축은행의 10년 전 이름은 상호신용금고였다. 현재의 서민 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나 신용협동조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동네 주민과 전통시장 등 주로 골목상권을 영업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수신 기반이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상호신용금고가 아무리 무리한 영업을 하다 쓰러지더라도 나라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미미했다.

그런데 2001년 3월 갑자기 법이 개정되면서 명칭이 상호저축은행으로 바뀌었다. 2,000만원이던 예금보호한도도 은행처럼 5,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사실상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업무는 상호신용금고와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그러니 동네슈퍼에 대형마트 간판을 달아준 격이었다. 고객들에게 착시 현상이 생기는 건 당연지사. 일반 은행처럼 우량한 금융기관이라는 인식을 심어줬고, 그 결과 수신고가 10년 새 4배 가까이 폭증했다.

금융정책 및 감독의 총체적 실패

돈은 많은데 굴릴 데가 없자 저축은행 업계는 또 우는 소리를 해댔다. 어느 순간 리스크가 큰 부동산 파이낸싱(PF) 대출에 '올인'할 수 있도록 규제가 풀렸다. 호사다마라고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저축은행에 직격탄이 됐다. 건설경기가 꺾이면서 PF 부실이 걷잡을 수 없이 쌓여갔다. 허나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 이유는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저축은행 정책과 감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직원들에게 수천만원의 뇌물과 정기적인 떡값이 건네졌고, 금품 및 향응 공세에 놀아난 직원들이 제 직분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금융 정책 및 감독기능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금융위는 저축은행 부실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고, 금감원은 저축은행과 유착돼 상처가 곪아 터질 때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당연히 금융감독 개혁의 핵심은 금융위 정책의 난맥상을 바로잡고 금감원이 독점해 온 검사 권한을 분산해 검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이어야 한다.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금감원을 방문해 "이번 기회에 제도와 관행을 혁파해야 한다"고 강력한 개혁을 주문했을 때만 해도 뭔가 달라지겠지 하는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국민들의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다. 금융당국이 진정성 있는 반성을 통해 근본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밥그릇 챙기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망스런 결과는 금융감독혁신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될 때부터 예견됐다. 민간위원들이 포함되긴 했지만, 저축은행 정책 실패의 당사자인 금융위와 금융감독 시스템을 만든 기획재정부 등 개혁 대상인 모피아 관료들이 사실상 TF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TF가 감독체계의 조직 자체를 바꾸는 문제까지 건드리면 답을 못 낼 수 있다"며 출발 시점부터 활동 방향을 견제하고 나섰다. 금융 관료들은 "금융감독 체계를 바꾸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권 초기에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TF의 활동범위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은 TF를 만든 것 자체가 국민들의 비판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술책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하는 셈이다.

개혁 대상이 개혁 시늉

저축은행 비리는 금감원 혼자 잘못해 발생한 게 아니다. 금감원을 지휘ㆍ감독해야 할 정부(금융위)의 책임이 금감원 못지않게 크다. 비리의 온상임이 드러난 금융 관료에게 자체 개혁을 주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통령 책임 아래 금융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금융감독 체계와 인적 쇄신, 감독 권한의 독점구조 해체 등을 포함한 근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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