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열차가 17일 국내에서 두 번째로 긴 터널에 한 시간여 동안 멈춰서면서 승객 400여명이 어둠 속에서 무더위와 공포에 시달렸다. 지난 주말(15일)에 이은 이틀만의 사고 재발로, 올해 들어 사고ㆍ고장 건수(10분이상 지연된 경우)로만 37번째다. '고속철'이라기 보다는 '고장철'로 이름을 바꿔야 할 지경이다.
사고가 난 KTX 120호 열차가 이날 부산역을 출발한 것은 오전 9시40분. 중간역인 동대구역에서 안내방송도 없이 10분 정도 지연 출발한 이 열차는 오전 11시께 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을 잇는 길이 9.975㎞의 황학터널 안에서 멈춰서 버렸다.
바로 열차 안 냉방장치와 전기 공급이 중단됐고, 승객들은 밀폐된 열차 안에서 찜통 더위와 암흑 공포에 떨어야 했다. "모터 이상으로 열차가 멈췄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승객들의 동요를 잠재우진 못했다. 폐쇄공포증을 앓고 있는 한 승객은 몸을 떨며 고통을 호소하다 안내방송을 듣고 달려온 한의사의 도움으로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승객들이 터널을 빠져 나온 시각은 낮 12시3분께. 사고 발생 후 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승객 김모씨는 "터널 한가운데에 서니 대구지하철 참사 생각이 나 겁이 났다"며 "냉방장치와 전기는 얼마 후 복구됐지만 고립됐는데도 대책이 없다는 무력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고 말했다. 일부 승객들은 코레일을 상대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고로 KTX 상행선 통행이 중단돼 하행선으로 상ㆍ하행선이 번갈아 다니면서 후속 열차 대부분이 1시간 이상 지연 운행됐다.
또 이날 오후 1시45분 부산역을 출발한 서울발 KTX 252호 열차가 구포역을 지난 오후 2시께 냉방장치 이상을 일으켜 냉방공급이 중단됐다. 승객 800여 명은 2시간 여 이 열차를 타고 가다 오후 4시께 대전역에 가서야 다른 열차로 갈아탔다.
코레일 관계자는 "KTX는 안전장치가 이중 삼중으로 갖춰져 있어 사소한 이상이 발생해도 열차 스스로 멈춰 선다"며 "정확한 조사를 통해 원인을 밝힌 후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김천=전준호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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