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내 핵심부서인 경제정책국에 근무하던 여사무관 S(33)씨는 올해 4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8년여의 재정부 경력을 포기하고 신설부처 행을 택한 이유는 국과위가 내년 정부부처 세종시 이전 후에도 서울에 남기 때문이다. 서울이 직장인 남편과 '주말부부'도 생각해 봤지만, 잦은 야근에 혼자 지방에 거주하며 4살 아들을 돌볼 자신이 없었다. S씨는 "당초 공직에서 이루려던 꿈을 지키자니 너무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야심적으로 추진해 온 세종시ㆍ혁신도시 이전 계획이 표류하고 있다. 현정부가 참여정부 사업이라는 이유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다 이전 대상 기관들도 서로 눈치를 보며 버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청사 공사만 예정대로 진행될 뿐 거주 인원도 파악하지 못하는 등 주거대책에 빨간 불이 켜졌다. 내년부터 공공기관 이전이 예정된 혁신도시는 더 심각해 공사 진척률이 40%에도 못 미치고, 이전기관 147곳 중 사옥 매각을 마친 곳은 19곳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어, 이전 대상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이 앞다퉈 서울에 남는 부처로 탈출하고 있다.
17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과거 수십 년간 1순위 선호부처였던 기획재정부는 올 상반기에만 14명의 사무관이 서울에 남는 비인기 부처로 전출했다. 고시 출신 사무관의 경우 최근 10년간 타부처 전출 건수가 매년 0~3명에 불과했으나, 최근 1년 새 12명이 떠났다. 올해 초 결원을 메우기 위해 낸 사무관 '○○명' 전입공고에는 고작 1명이 지원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수십 년간 선망의 대상이던 부처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원하는 부처를 고를 수 있는 행정고시 성적 최상위권 신입 사무관들의 선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한나라당 진영 의원이 행정안전부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시 일반행정직 상위 10위권 가운데 서울 잔류부처를 선택한 사례는 2008년 0건에서 2009년 1건, 지난해 3건으로 늘었다.
한편에선 업무와 생활 측면의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를 수시로 오가야 하는 정책부처들은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폭 늘면서 행정의 속도가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자녀교육 문제 등으로 '이산가족'도 대거 양산될 전망이다. 국무총리실의 '세종시 이전부처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16개 중앙행정기관과 20개 소속기관 직원 1만1,160명 가운데 31.7%만 '가족 전체가 이주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한국일보가 재정부의 한 과장급 기수 22명을 조사한 결과, 17명이 혼자 내려가 '기러기 가장'으로 지낼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부문 곳곳에선 정부의 무관심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4대강 사업 등에 집중하느라 이전 정부에서 확정된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사업에 소홀하다는 것이다. 중앙부처 한 간부는 "주거나 교육 환경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라며 정부의 적극적인 관심과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허정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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