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절반쯤 왔을 때, 주인공 모노는 이런 의문을 품는다. "누군가 주사위를 던지고, 자신은 던져진 주사위의 숫자만큼 이동하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빙고! 맞다.'(소설의 첫 문장이기도 하다.) 그를 보드 게임의 말(馬)처럼 두고, 주사위를 던지는 이는 그를 개발한 김중혁(40)씨다.
김씨의 두번째 장편소설 <미스터 모노레일> (문학동네 발행) 속 등장인물들은 주인공 모노와 비슷한 신세다. 게임의 큰 스토리 라인과 규칙 내에서 주사위의 우연에 따라 이런 저런 모험을 하며 목표점을 향해 달리는 보드게임의 말들을 쏙 빼 닮았다. 예컨대 모노가 로마에서 별 이유 없이 베니스행 기차를 타고, 기차에서 이상한 승무원을 만나 도중에 시에나에서 내리고 거기서 옛 친구가 있는 몬탈치노까지 태워 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그런 종잡을 수 없는 행로는 보드게임이라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좋은 게임카드를 만나 우연히 일확천금 할 수 있고 주사위 숫자에 따라 달나라를 갔다가 또 금방 무인도에 갇히는 것이 다반사인 세계니까. 미스터>
이 소설의 큰 줄거리는 '볼교'(ball敎)라는 사이비 종교단체에 빠진, '지구에너지환경시스템공학과' 출신의 오랜 백수 생활자 고갑수의 행적을 뒤쫓는 이야기. 등장하는 말들은 '모노레일'이란 보드게임을 개발해 대박을 친 모노, 동료 게임 개발자이며 고갑수의 아들인 고우창, 고우창의 여동생이며 모노를 짝사랑하는 고우인이다. 고갑수가 회사 자금 수억원을 빼내 볼교의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 잠적하자 이들은 제각각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돌며 그를 찾아 나서고, 고갑수는 그 나름대로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음모와 배반의 게임을 벌인다.
소설은 그러나 이런 대략적인 스토리 라인이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구가 둥근 이유는 '외계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시차 덕에 지구 사람들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설 수 있기 때문!)라는 식의 농담, 핀볼 게임에서 따온 '핀볼 성자'니 '볼교'식의 언어 유희, 그리고 주사위 놀이 같은 밑도 끝도 없는 우연적 전개가 이 소설의 앙꼬다. 이런 특징을 '김중혁스러운'이란 형용사로 부를 수도 있겠다.
"어떤 숫자가 나오든 상관없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주사위는 공평한 거니까"라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가 김중혁은 대략적 서사틀과 캐릭터를 구상한 뒤 주사위를 던지듯 이야기를 만든 것처럼 보이는데, 주사위 역할을 하는 것은 그의 즉흥적 감각과 재담이다.
하지만 주사위를 던지는 창작자와 주사위가 던져진 결과물을 보는 독자의 입장은 다르다. 보드게임의 참여자라면 그 게임이 흥미롭겠지만, 구경꾼으로선 시간이 남아돈다면 모를까 큰 흥미를 갖고 지켜보기 어려울 듯하다.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은 소설을 만든 이뿐 아닌가.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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