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히…" 눈 밖 나면 정치생명 끝 미디어공룡에 방울달기 잘될까
파파라치, 누드사진, 다이애나, 라이언 긱스...
옐로저널리즘(선정주의 보도)의 대명사로 통하는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을 거론할 때 떠오르는 단어 혹은 사람들이다. 이제는 여기에 '정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을 추가해야 할 듯하다. 연예인 또는 왕실 가족의 꽁무니를 쫓거나, 유명인의 과거를 폭로하는 데 열을 올리는 줄 알았던 타블로이드 신문이 실은 정치권의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 뉴스오브더월드 도청 사건에서 확인됐다.
총리보다 센 '상왕 머독'
지난 30여년간 영국 총리들은 사실상 두 명의 왕을 모셔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명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이고 다른 한 명은 직함은 없지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루퍼트 머독(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이다. 머독은 일요판 발행부수 1위(뉴스오브더월드), 일간지 1위(더선), 고급지 1위(더타임스) 신문을 모두 소유하며 영국 정계에서 총리보다 센 발언권을 행사해 왔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언로의 장악은 곧 '절대반지'를 손에 넣는 것이다. 장기집권 실세총리였던 마가릿 대처(11년 6개월)와 토니 블레어(10년 1개월)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캐나다 일간 글로브앤메일에 따르면 대처의 한 참모는 머독이 1979년 보수당의 선거 승리에 기여했다고 털어놓았는데, 머독은 그 대가로 영국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더타임스를 품에 안았다.
블레어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어는 95년 선거 직전 호주로 급히 날아가 머독을 만났고, 그 결과 더선과 더타임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다. 블레어의 전 언론담당보좌관 랜스 프라이스는 훗날 "총리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고든 브라운(당시 재무장관)과 존 프레스콧(부총리), 그리고 머독 이 세 사람의 반응을 염두에 둬야 했다"고 회고했다.
타블로이드의 채찍
대영제국 총리마저 머독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일반 의원들은 머독의 위세를 등에 업은 타블로이드의 횡포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영국 타블로이드 특히 '머독의 아이들'(더선, 뉴스오브더월드)이 정치인들을 어떤 식으로 길들여왔는지가 9일자 뉴욕타임스에 소개돼 있다.
타블로이드는 자신들에게 조금이라도 적대적 입장을 취한 정치인에게는 반드시 기사로 갚아준다. 일방적 매도와 사실왜곡,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크리스 브라이언트(노동당) 의원이 2003년 하원 청문회에서 레베카 브룩스 당시 더선 편집장(현 뉴스인터내셔널 사장)을 곤란하게 하는 질문을 하자 뉴스오브더월드는 브라이언트가 동성애자 사이트에 올린 반나체 사진을 삽화로 변형해 게재했다. 브라이언트는 이미 자신의 성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였다. 나중에 브룩스는 브라이언트를 저녁 자리에서 만나 "어머, 브라이언트씨, 지금쯤 게이 모임에 계셔야 할 분이"라고 조롱했다.
데이비드 멜러(보수당) 의원도 낭패를 당했다. 그는 "타블로이드 규제가 필요하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는데, 이를 벼르던 뉴스오브더월드는 3년 후 멜러의 정부(情婦)를 매수해 "멜러는 첼시 유니폼을 입지 않으면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2004년 노동당 여성의원 클레어 쇼트는 타블로이드가 3면에 여성 나체사진을 싣는 것에 반대한다며 "신문에서 포르노를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더선은 이를 '질투심에 가득 찬 뚱뚱한 클레어, 3면에 낙인을 찍다'는 제목으로 보도하며 나체 여성의 몸에 쇼트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실었다. 머독에게 밉보였다는 이유로 92년 선거에서 더선의 공격을 받았던 닐 키녹 전 노동당수처럼, 다 잡았던 정권을 놓친 경우도 있다.
뒤늦은 독립선언, 그러나...
영국 정계가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타블로이드 목에 규제의 방울을 달지 못했던 이유는 굴종의 대가로 주어지는 달콤한 열매(당선) 때문이었다. 칼럼니스트 마가릿 웬트는 "영국 정치 엘리트들은 머독의 비위를 맞춰주면서도 그를 증오한다"면서 "그들은 당선이 되려면 머독이 필요하다는 점과, 머독이 자신들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머독에게 철저히 가위눌렸던 정치권은 뉴스오브더월드 사건을 계기로 타블로이드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자 "언론의 무분별한 횡포를 통제할 수단이 필요하다"며 뒤늦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신문을 규제할 독립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고 닉 클레그 부총리는 머독의 위성방송 BSkyB 인수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머독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력의 정치 지도자가 많아 이런 움직임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언제나 그랬듯 캐머런도 총리가 되기까지 머독 휘하 신문사 덕을 크게 봤고, 전 공보책임자 앤디 쿨슨(전 뉴스오브더월드 편집장)이 도청 사건 관련 경찰에 금품을 제공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머독은 BSkyB 인수를 포기했지만 여전히 영국 신문 37%를 보유하고 있어 여론독점 현상은 쉽사리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미디어크라시의 화신' 머독… 물불 안가리고 제국 확장
전세계에 언론 관련 기업만 700여개를 소유한 루퍼트 머독은 미디어 제국의 황제로 불린다. 그러나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걸어온 길은 스캔들로 가득차 그는 '비열한 호주인(Dirty Digger)'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머독은 종군기자 출신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호주의 지역언론을 1953년 물려받으며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22살 청년 머독은 뛰어난 사업가 기질을 보이며 회사를 키웠다. 작은 언론사를 인수해 황색저널리즘으로 도배해 부수와 수익을 높인 뒤 고급지까지 인수하는 머독의 확장전략은 그의 영국진출 성공이력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머독은 1964년 호주 최초의 전국 일간지 더오스트레일리안을 창간한 뒤 1969년 일요 타블로이드 뉴스오브더월드 인수를 시작으로 영국에 진출한다. 선정적 기사로 영국 언론시장에 자리를 잡은 머독은 일간지 더선 인수에 성공했고, 1981년 고급지인 더타임스까지 손에 넣었다. 더타임스를 인수한 뒤에는 중도성향의 일간 텔레그래프를 무너뜨리기 위해 광고료와 신문가격을 동시에 내리면서 맹공을 퍼부었다. 경쟁자를 제거해서 독점의 이득을 꾀하고자 덤핑도 불사한 것이다.
호주와 영국에서 성공한 머독은 70년대 똑같은 전략을 적용해 미국에 상륙했다. 한동안 시행착오를 겪은 그는 일간지 뉴욕포스를 인수하며 미국 시장에 안착했고, 1996년 호주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귀화하면서까지 TV시장을 파고들었다. 머독의 폭스뉴스는 보수적인 시각을 노골화하며 뉴스 시장을 장악하던 CNN을 잠식해 나갔고, 2001년 9ㆍ11테러 이후 강한 보수화 물결을 등에 업고 2002년 CNN의 시청률을 추월한다. 2007년 뉴욕을 근거지로 삼고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을 인수한 뒤에는 14면짜리 뉴욕섹션을 추가해 뉴욕타임스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이익을 위해서는 정치권력과 결탁도 주저하지 않았다. 2003년 폭스뉴스가 단일 회사의 지역 방송망이 전체 시청가구의 35% 이상을 점유하지 못하도록 한 미국 연방통신법 규정에 걸리자 대대적인 로비를 벌여 규정을 바꿔낸다. 선거자금 기부, 전직 관료에 대한 일자리 제공, 소유 매체를 통한 언론플레이 등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언론에서는 그를 미디어크라시(언론정치)의 화신이라며 비난했다.
이동현 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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