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개월째다. 전업 화가로 활동 중인 양은주(32)씨는 매주 목요일이 되면 작업실이 아닌 길거리로 출근한다. 장맛비가 쏟아지던 14일 오전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L손해보험빌딩 앞. 양씨는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노조 가입을 방해하는 한 대형 보험회사를 규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빗속에서 3시간 동안 시위를 벌인 그는 "매주 약속을 지키는 게 쉽지 않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어머님들의 처지가 딱해서 찾아오게 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양씨의 1인 시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인디밴드 보컬 이진원씨의 죽음이후 명동 거리를 돌며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기억하자고 호소했지만 반응은 냉담 그 자체였다. 그러나 지난 1월 홍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지지 시위차 홍대입구역을 찾으면서부터 자신감을 찾았다. 홀로 피켓을 들고 서있는 양씨에게 다가온 중년 아주머니 무리는 "대신 나서줘서 고맙다"며 응원했고 몇몇 대학생들은 1인 시위에 동참하고 싶다며 문의하기도 했다.
이들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 주저하거나 방법을 몰라서 고민하는 시민들을 지원하고자 양씨는 지난달 14일 사회적 기업 '1인시위.com'을 만들었다. 시민사회단체 운동가만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도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목적이었다. 시위 의상 준비, 피켓 제작, 퍼포먼스 아이디어 등을 제공하고, 시위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세상에 말하고픈 말이 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인터넷 홈페이지(1인시위.com)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또 시민들이 자신의 1인 시위 내용을 이곳을 통해 알릴 수도 있다.
1인 시위를 하면서 알게 된 이창현 국민대 교수와 공공예술가 임옥상 화백도 함께 뜻을 모았다. 운영 자금은 1인 시위 의뢰를 미리부터 예약해놓은 세 사람의 지인들이 십시일반 보태줬다.
양씨는 "당장 무슨 이익을 내겠다고 일을 시작한 게 아니다"며 "나의 1인시위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막상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출범한 지 이제 한 달, 홍보가 덜 된 탓인지 아직 의뢰 건수는 많지 않다. 동물보호협회에서 삼복더위를 앞두고 개 식용 반대 집회에 나서달라는 정도. 그래서 양씨를 비롯한 3명의 대표들이 직접 길거리로 나가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탈원전 사회, 최저임금 현실화, 4대강 반대, 고엽제 진상규명 요구 시위를 선보였다.
이창현 교수는 "1인 시위야말로 일반 시민들이 개인적 이슈를 사회적 이슈로 승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미디어"라며 "기성 언론에서 주목하지 않는 일상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두겠다"고 말했다. 임옥상 화백은 즐겁고 창의적인 시위를 강조했다. 시위인지 놀이인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하다 보면 계속 싸워나갈 힘이 생긴다는 것.
양씨는 1인시위.com이 대한민국 1인 시위 활동가들의 사랑방이 되길 바랐다. "1인 시위는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건네는 희망의 프러포즈죠. 전국 각지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혼자가 아니다, 함께하자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지향하지만, 수익을 어떻게 내서 어디에 쓸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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