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제철소 열연공장의 노동생산성은 가공할 만하다. 생산라인은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두툼하게 잘린 슬래브 덩어리가 들어오는 지점부터 시작돼 얇게 가공된 강판이 거대한 화장지처럼 둘둘 말려 나오는 열연코일 포장에서 끝난다. 컨베이어벨트는 철로 레일처럼 쭉 뻗은 직선이며, 길이는 약 500㎙에 이른다. 슬래브는 열기와 굉음을 내뿜으며 컨베이어벨트를 흐르는 동안 냉각과 프레스, 코팅과정을 거쳐 얇고 매끈한 열연강판으로 거듭난다.
광양제철소 열연공장 생산라인 한 곳에서 하룻동안 생산되는 열연코일은 약 750개며, 전체 무게는 1만8,000톤, 시가는 190억 원 정도다. 하지만 거대한 생산라인 한 곳을 운영하는 데 하루에 투입되는 인력은 26명에 불과하다. 한 사람이 하루에 열연코일 692톤(1톤으로 승용차 한 대를 만든다), 시가 7억3,000만 원어치의 제품을 생산해 내는 셈이다. 경탄 끝에 슬며시 '이러니 일자리 잡기가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지'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안일한 복지공무원 증원계획
느닷없이 제철소 얘기를 꺼낸 건 최근 잇달아 나오고 있는 정부의 공무원 증원계획 때문이다. 당정은 2014년까지 전국 읍ㆍ면ㆍ동의 복지공무원을 7,000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그제는 복지공무원을 포함해 내년 공무원 신규 채용규모도 올해보다 4,600명 늘리기로 했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복지사각지대 해소와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실업 해소 등이 목적이란다. 은근히 일거양득의 묘수라도 찾은 듯한 분위기다. 하지만 '작은 정부' 기조를 뒤집는 이 계획은 더 나은 행정서비스에 대한 기대보다는 끝없는 공무원 증원에 대한 의구심만 불러일으킨다.
복지사각지대 해소도 좋고,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도 좋다. 하지만 공무원증원에 앞서 반드시 먼저 따져봐야 할 건 증원의 불가피성이 돼야 할 것이다. 7,000명만 쳐도 이런저런 점을 감안해 광양제철소 열연공장 생산라인 135개를 상시 가동할 수 있는 막대한 인력이다. 채용을 이렇게 큰 규모로 늘리려면 노동생산성 제고 노력을 해볼 만큼 했는지, 업무 시스템 개선노력은 해봤는지 등에 대한 설명을 국민에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고용률이나 높이겠다는 의도라면 군인 수를 늘리는 게 낫다.
복지공무원 증원과 관련해 정부가 내놓은 근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 비해 우리의 복지공무원 숫자가 크게 적다는 것이다. OECD 회원국들의 평균 복지공무원수는 인구 1,000명당 12명 선인데, 우리의 경우 0.46명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동사무소 복지공무원 1명이 관리하는 복지 대상 가구가 300개가 넘어 한 달 내내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녀도 관리가 역부족이라는 호소나, 과로로 여성공무원이 유산까지 했다는 안타까운 얘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다수 국민들은 복지공무원을 비롯한 공무원 증원을 선뜻 수긍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공무원들의 생산성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생산성ㆍ시스템 개혁이 먼저다
300가구를 관리하느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동사무소 복지공무원의 경우, 직속 상사나 인접 창구의 다른 직원이 업무를 보조해줄 수 있다. 또 300가구를 혼자 일일이 방문하기보다 거주민 거점 관리체제를 발전시키거나, 자원봉사조직을 활용할 수도 있다. 아울러 인터넷이나 응급 연락수단 등은 관련 업무에 드는 수고를 크게 절감할 것이다. 동사무소장이 민간회사의 관리자였다면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는 업무효율화 여지가 남아 있다고 국민은 보고 있다.
공무원수가 10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선진국처럼 비정규직 등을 포함시킬 경우 200만 명에 달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100만 명이라고만 쳐도 인구 50명 당 공무원 1명인 셈이다. 공무원수는 지난 5년 동안에만 이미 7만2,500여명이나 증가했다. 더 늘리겠다면 생산성과 시스템 개혁 노력을 먼저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러다간 공무원 '봉양'하느라 일반 납세자의 허리가 부러지게 될지도 모른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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