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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두고 와서 후회하면 늦으리… '휴가를 살찌우는 이 한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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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두고 와서 후회하면 늦으리… '휴가를 살찌우는 이 한 권의 책'

입력
2011.07.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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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가 그치고 나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황홀한 여름 휴가입니까. 배낭 메고 산으로 바닷가로, 비행기에 몸 실을 준비를 위한 '여행 소지품' 목록에 책 한 권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제목에 끌려 3분의 1쯤 읽고 나서 '잘못된 선택'인 줄 알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한국일보 출판팀이 '올 여름 이 한 권'을 추천합니다. 왕성하게 활약하고 있는 도서ㆍ출판 평론가 이권우, 표정훈, 한미화, 이현우씨에게서 다섯 권씩 추천을 받아 이 중에서 열 권을 골랐습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1992년 덴마크에서 출간된 추리소설로 국내에도 1996년 번역됐으나 책의 진가가 알려지기도 전에 절판 됐다가, 마니아들의 입소문 덕에 2005년 다시 나왔다. 정통적 추리 퍼즐에서부터 스릴러, 로맨스, 철학적 통찰, 문명비판까지 아우른 획기적 추리소설이란 평. 얼음과 눈(雪), 숫자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주인공 스밀라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진 소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게 골격이다. 경찰은 단순 실족사로 처리하지만, 주인공은 특유의 관찰력으로 눈 위에 남겨진 소년의 발자국에서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탐정의 여정에 나선다. 표정훈씨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은 탁월한 추리소설"이라며 "눈과 얼음에 대한 스밀라의 특별한 감각이 더위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해줄 것이다"고 추천했다. 박현주 옮김. 마음산책 발행ㆍ 627쪽ㆍ1만3,500원.

▦사랑에 관하여/ 안톤 체호프 지음

읽을수록 새롭고 놀랄 만큼 현대적인, 단편 문학의 거장 체호프의 단편선집으로 지난해 '펭귄클래식' 고전시리즈의 하나로 나왔다. '굴' '진창' 등 초기작에서 '사랑에 관하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검은 수사' 등 중후기 대표작까지 9편을 담았다. 특히 얄타의 휴양지가 무대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사랑에 관한 그의 작품의 결정판. 바람둥이 유부남이 휴양지에서 짧은 연애를 한 뒤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그녀를 잊지 못해 갈등하는 내용. 이현우씨는 "어찌 보면 일상적 불륜담이지만 그 일상 속에서 인간존재의 진실을 발견하는 게 체호프의 힘이다"며 "여름 휴양지에서 읽을 만한 책이다"고 추천했다. 안지영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발행ㆍ256쪽ㆍ1만원.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고병권 지음

연구공간 수유 너머의 대표적 이론가인 저자가 민주주의의 통념에 도전하며 새 개념을 검토하는 책으로 한국 사회 뉴레프트의 민주주의론을 엿볼 수 있다. 저자가 전복시키려는 것은 민주주의란 '다수가 지배하는 체제로 현실적으로는 투표로 뽑힌 대표자가 통치하며, 성숙한 모델로 발전해간다'는 통념이다. 민주주의의 원뜻은 '데모스(민중)의 힘'(데모크라시). 데모스는 시민과 외국인, 노인과 젊은이 등이 분별없이 뒤섞인 무리인데 플라톤은 이를 괴물로 묘사하며 민주주의를 근거가 없는 것으로 조롱한다. 독특하게도 저자는 여기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발견한다. 민주주의에서는 지식, 재산, 혈통, 그리고 다수라는 숫자도 억압이나 배제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민주화 투쟁이란 이런 근거들이 전혀 근거 없는 것임을 폭로하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이권우씨는 "플라톤의 반민주주의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끌어낸다"고 평했다. 그린비 발행ㆍ136쪽ㆍ6,900원.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김태권 글ㆍ그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던 2003년 첫 권이 나온 후 현재 3권까지 출간된 지식교양만화다. 이슬람과 기독교간 충돌의 시원 격인 십자군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 종교ㆍ문명간 갈등이 인간의 탐욕과 광기의 산물임을 일깨워준다. 서구적 시각에서 벗어나 십자군 전쟁을 조망하면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대 역사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만화 특유의 위트와 반전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청소년에서 성인까지 두루 읽을 수 있다. 최근 3권 출간과 함께 1, 2권 개정판이 새로 나왔다. 저자는 총 6권으로 완간할 예정이다. 이권우씨는 "서구 중심의 세계사에서 벗어나 십자군과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책이다"고 말했다. 비아북 발행ㆍ각권 240~340쪽ㆍ각권 1만2,500원.

▦싸구려 모텔에서 미국을 만나다/ 마이클 예이츠 지음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30년 넘게 노동경제학을 가르쳤던 예이츠 교수는 연금 받을 나이가 되자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난다. 집과 가재도구도 모두 정리하고 2001~2005년 부인과 함께 말 그대로 미국 전역을 전전했다. 왜? 책상 앞에서 연구를 통해 알게 된 노동이 아니라 미국의 노동현실이 정말 어떠한 것인지 체험하고 싶어서다. 그는 국립공원 내 호텔 프런트 데스크와 식당에서 일하기도 하고 평소 글을 기고하던 잡지사에서 근무도 해 본다. 일 없이 등산을 즐길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불평등, 사회 양극화, 환경오염의 실상을 경험한 그대로 글로 보여주?독특한 여행서. 이권우씨는 "미국의 경제사를 키워드로 미국사의 내부를 보여준다"며 "우리의 문제도 미국 신자유주의의 문제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추선영 옮김. 이후 발행ㆍ426쪽ㆍ1만6,000원.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진보인지 보수인지 종잡기 힘든 저자(런던정경대 교수)는 책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같은 부류'라거나 '휴머니즘은 종교' '진보는 환상'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서구 기독교나 계몽주의, 공산혁명이나 글로벌 자본주의 같은 거대 정치기획을 겨냥한 것이다. 저자는 이상향을 타인과 다른 사회에 확산시키려는 활동은 '유토피아주의의 폭력성'을 수반한다고 지적한다. 정치란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거대한 기획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악에 잘 대처하는 '소박하고 일시적인 것'이라고 믿고 그래서 '인간의 의지를 세상에 투사하거나 부여하려 하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두라'고 권한다. 책의 원제목('지푸라기 개')는 노자의 에서 따왔다. 이현우씨는 "휴머니즘에 잔뜩 낀 거품을 빼주는 책"이라며 "정신 감량 효과가 있다"고 평했다. 김승진 옮김. 이후 발행ㆍ289쪽ㆍ1만6,000원.

▦디퍼런트/ 문영미 지음

한국인 최초의 미 하버드 경영대학원 종신교수인 저자는 책에서 '경쟁관계로 얽혀 있는 수많은 기업이 서로를 모방하는, 그래서 유효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그리고 진정한 차별화를 추구하려면 차별화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새로운 비즈니스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존의 법칙에 도전한 아웃사이더들과 그들이 일군 비즈니스계의 지각변동은 좋은 참고 사례다. 야후와 다른 전략으로 인터넷 포털시장의 판도를 바꾼 구글(역 브랜드), 로봇을 애완견으로 포지셔닝한 소니(일탈 브랜드), 작은 차라는 불친절한 태도로 인기를 끈 미니 쿠퍼(적대 브랜드) 등이다. 표정훈씨는 "휴가 기간 딱 한 권의 경제경영서를 읽는다면 단연 이 책"이라며 "시장, 브랜드, 소비자 심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고 말했다. 박세연 옮김. 살림Biz 발행ㆍ326쪽ㆍ1만5,000원.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 지음

"이 책을 읽고 빌 브라이슨 마니아가 되지 않기란 힘들 것"이라는 표정훈씨의 말처럼 브라이슨의 글은 언제 읽어도 유쾌하다. '네덜란드인들은 영국인들과 매우 비슷하다. 모두 좀 칠칠맞지 못하다. 그러나 좋은 의미에서 그렇다. 차를 주차하는 법이나 쓰레기통을 배치하는 방법, 제일 가까운 나무나 난간 등에 자전거를 아무렇게나 던져놓는 모습까지 상당히 유사하다. 독일이나 스위스에서 보는 강박적인 정리정돈은 찾아볼 수가 없다.'('암스테르담')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에서 터키 이스탄불까지 유럽 전역을 종횡무진하며 보고 겪은 이야기를 풀어놓은 여행기. 브라이슨의 글을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정의하며 "낄낄대면서 번역을 했다"는 번역자는 그의 글에는 "심장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따스함이 담겨 있다"고 했다. 권상미 옮김. 21세기북스 발행ㆍ390쪽ㆍ1만3,800원.

▦우리가족이 살아온 동네이야기/ 김향금 지음

1940년대의 아홉 살 소녀 연이는 논밭이 어우러진 시골 기와집에 살았다. 1970년대 아홉 살 소녀 근희는 서울 청계천변 시장어귀 개량한옥에서 학교를 다녔다. 2010년 아홉 살인 은이는 편리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할머니, 엄마, 딸 3대가 살아온 공간을 토대로 변화하는 주변 모습을 다양한 이야깃거리들과 함께 그려냈다. 시멘트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옛날 옛적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어른들에게는 옛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미화씨는 "할머니와 엄마, 딸이 옛날 살았던 곳으로 떠나는 추억여행으로 엄마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책"이라고 평했다. 열린어린이 발행ㆍ초등학생용ㆍ1만2,000원.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황선미 지음

동화작가 황선미의 첫 청소년소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집을 잃어버린 가족의 이야기다. 저자는 가난하고 궁핍했던 어린 시절 자전적인 경험을 토대로 썼다. 소설 배경은 평택 객사리. 이곳에서 가장 허름한 초가집에 살고 있던 일곱 가족이 새마을운동으로 집이 불타 없어지자 가느다란 각목을 얼기설기 이은 꺽다리 집을 짓고 산다. 늘 찬바람이 고이고 심지어 추위에 아버지의 얼굴마저 마비시킨 도무지 집 같지 않은 이곳에서 몸을 부대끼며 온기를 나누고 삶을 버텨내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았다. 한미화씨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로서 열 한 살 소녀가 자존심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와 닿았다"고 추천했다. 사계절 발행ㆍ청소년용ㆍ9,000원.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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