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문명이야기' 방대한 인류 문명사, 첫 장은 동양에서 시작된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문명이야기' 방대한 인류 문명사, 첫 장은 동양에서 시작된다

입력
2011.07.15 04:32
0 0

문명이야기/윌 듀런트 지음·왕수민 등 옮김/민음사 발행(전6권)·각권 2만3,000~3만원

먼저 윌 듀런트(1885~1981)라는 인물부터 소개해야겠다. 그는 <철학 이야기> 라는 인물 중심의 서양철학사로 꽤 유명한 미국의 인문학자다. 1917년 컬럼비아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대학 교회 등에서 철학과 역사, 문학을 가르치다 1926년 <철학 이야기> 를 내서 제법 돈을 벌자 아예 교직을 떠났다. 그리고 50년 동안 가끔 평론 쓰는 것을 제외하고 제자였던 부인의 도움을 받아 가며 거의 전 생애를 투자해 자료를 찾고 답사해가며 <문명 이야기> 라는 책을 썼다.

'어떻게 한 사람이 짧은 생애 동안 한 인종의 유산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라는 그의 고백처럼 이 작업은 애초 한 두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열정은 그를 이 무모한 작업으로 이끌었다. 인류 문명의 태동부터 현대까지의 전 역사를 그것도 정치사나 문화사 등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한다는 원대한 목표는 1935년 첫 권 '동양문명'에서 시작해 1975년 제11권 '나폴레옹의 시대'를 끝으로 무사히 달성됐다.

<철학 이야기> 를 맛 본 사람이라면 국내 첫 완역된 <문명 이야기> 에 대한 기대가 클 것이다. 듀런트의 문장은 간결하면서도 자상하고,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저술의 주제가 워낙 방대한데다 원저가 나온 게 첫 권 기준으로 70년도 넘어 군데군데 고증이 치밀하지 못한 곳이 거슬릴 독자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런 대목에서 듀런트는 무리하지 않은 상상력을 동원해, 오히려 치밀하게 쓴 고고학이나 역사학 서적에서 경험하는 '소화불량'을 피해갈 수 있게 해 준다.

눈길 가는 것은 제국주의의 아시아 쟁탈전이 절정일 무렵 집필을 시작한 듀런트 문명사의 첫 권이 '동양'이라는 점이다. "서양의 이야기는 동양에서 시작된다. 동양의 문명들이 그리스와 로마 문화의 토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어 그는 "지금 우리는 유럽의 패권이 급격한 종말을 맞고 아시아가 부활의 삶을 누리고 있어, 동양과 서양 사이의 전반적 갈등이 20세기의 주요 테마가 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역사적 순간에 와 있다"며 "이런 상황에 그리스 이야기로 시작해 아시아는 한 줄로 요약해 버리고 마는 종래 역사의 지역주의는 단순한 학문적 오류가 아니라, 올바른 관점과 지성의 참담한 실패로 봐도 무방하리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관점이 반영된 <문명 이야기> 는 수메르, 이집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로 시작해 인도와 중국, 일본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그리스 문명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나폴레옹 시대의 정치, 경제, 종교, 철학, 문학, 과학, 음악, 미술까지 총체적으로 섭렵한다. 1968년에 낸 10권 '루소와 혁명'은 퓰리처상까지 받았으니 "18세기 프랑스 백과사전에 버금가는 역작"이라는 평가가 과분하지 않다. 이중 이번에 먼저 번역 출간된 것은 1권 '동양문명', 2권 '그리스문명', 5권 '르네상스'다.

한국 독자로서 못마땅한 부분도 없지는 않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바쿠후(幕府)를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완벽한 형태의 봉건 정부'라거나 중국을 '가장 오래되고 가장 풍요로운 살아 있는 문명 가운데 하나'라고 상찬해가며 수백 쪽 분량으로 서술하면서도 한국 또는 다른 아시아 지역에 대한 언급은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매우 단편적으로만 등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런 '옥에 티' 때문에 이 책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물론 아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