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울증 때문에 병원을 찾은 적이 있어요. 당시 어떤 음악을 들으면 힘이 됐을까 생각하며 고른 곡들입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로 여러분께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14일 낮 12시 20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1층 로비에서 열린 희망음악회. 음악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26)씨의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가득했다. 연주를 들은 환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1985년 독일 마인츠에서 태어난 박씨는 '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렸다. 마인츠음대가 16세부터 입학할 수 있는 교칙을 바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데도 한 14세 소녀의 입학을 허가했는데, 주인공이 박씨였다. 독일 총연방 청소년콩쿠르에서 두 차례 1등을 차지했고 칼스루헤 국립음악대학원을 최고 점수로 졸업했으며, 미국에서도 음악 공부를 했다.
그러나 승승장구해왔던 박씨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스스로 지나친 완벽함을 추구한 나머지 2005년부터 3년간 우울증을 앓았던 것이다. 박씨는 "다른 장애물은 다 이겼는데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며 지난 3년을 회상했다. "밥도 먹기 싫고 모든 게 귀찮았어요. 방안에 햇빛이 들어오는 것조차 싫었으니까요." 마인츠음대에 다니면서 일반 인문계고 과정을 함께 이수하는 바쁜 생활 속에 박씨는 자꾸 허무해졌다. 어떻게 놀아야 할지도 모르고, 같이 놀아 줄 친구도 없었다. 박씨는 음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방황했다.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우울증을 극복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2008년 미국에서 만든 가스펠 앨범을 잘 아는 목사에게 전하러 한국에 왔다가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게 계기였다. "목사님 소개로 교회나 소록도 등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어요. 제 연주를 듣고 위로가 됐다거나 병이 나았다는 말을 들으니 음악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자신감을 되찾은 박씨는 이후 1년에 4개월 정도 한국에 머물며 봉사활동을 해왔다. 올해부터는 서울에 숙소를 마련해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통해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있다.
그의 꿈은 음악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클래식뿐 아니라 동요도 편곡해서 공연 때마다 끼워 넣는다. 박씨는 "아픔을 겪어봤기에 제 연주가 진심으로 전달되는 것 같다"며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 연주를 감상한 김미향(55)씨는 "갑상선에 이상이 생겨 검사 받으러 왔는데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니 긴장된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흐뭇해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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