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벌어진 한진중공업 파업사태가 해결방안을 찾지 못한 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야4당과 노동계, 시민사회가 연대투쟁에 나서면서 사태가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노사 협상타결 불구 갈등 증폭
지난해 12월 20일 사측의 정리해고에 맞선 노조의 총파업 이후 6개월 넘게 마찰을 빚어온 노사 양측은 진통 끝에 지난달 27일 ▦정리해고자 중 희망자에 한해 희망퇴직 처우 ▦형사 고소ㆍ고발 취소 및 징계면제 노력 등 조건으로 파업 철회에 전격 합의했으나 회사는 아직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합의에 반발한 해고자와 조합원 200여명이 현 집행부 퇴진과 재협상을 요구하며 투쟁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38개 협력업체들는 물론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한진중공업 회사측도 직접 파업손실 1,000억원대를 포함해 유ㆍ무형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노사 양측은 각자의 입장만 곧추세우고 있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정리해고의 직간접적 원인이기도 한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만 조선소에 해고인력을 재배치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사측은 한진중공업 근로자(연봉 6,000만원)과 필리핀 근로자(연봉 360만원) 간의 임금격차가 너무 커 현실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생산기지 해외이전이 발단
이번 사태는 공장(조선소) 해외 이전에 따른 국내 인력 구조조정에서 비롯됐다. 한진중공업은 대형조선소의 20분의 1 수준인 영도조선소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필리핀 수빅만 경제자유구역 80만평 부지에 2006년부터 조선소를 지어 운영 중이다. 2016년까지 세계 4위 규모의 대형조선소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그 사이 수빅조선소는 수주물량이 늘어 활기를 띤 반면, 영도조선소는 지난 3년간 한 척도 수주를 못했다. 사측은 "영도조선소의 선박 건조비용이 경쟁사보다 20% 이상 높아 수주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노조는 사측이 정리해고 명분을 만들기 위해 고의로 수주를 회피하고 물량을 수빅조선소로 빼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사측은 지난해 말 영도조선소 생산직 1,158명의 3분의 1이 넘는 400명을 정리해고하는 카드를 빼 들었고, 지난 2월 15일에는 이 가운데 희망퇴직자를 뺀 172명에 대해 해고를 단행했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시민단체 등 각계에서는 입을 모아 한진중공업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해법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만큼 사태의 원인이 단순하지 않은 데다 갈등의 뿌리가 깊다는 방증이다.
부산 경실련의 차진구 사무처장은 "사측도 더 이상 양보할 게 없다고 하고 민주노총 금속노조의 양보도 쉽지 않아 보인다"며 "현재로서는 노사 양측이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단체(시민단체나 부산시 등)가 개입해 합의를 중재하는 방법밖에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회에서 한진중공업 사태의 근본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사측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손동호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한진중공업이 적자회사가 아닌 이상 정리해고는 무리한 조치"라며 "정상화 후 재고용하는 것이 상생방안"이라고 지적했다. 노조 측도 "현금자산 1조원, 10년간 4,277억원의 흑자를 낸 기업이 경영난이 웬 말이냐"고 주장한다. 특히 회사가 지난해 말 대주주들에게 174억원의 주식배당을 한 점을 들어 "회사가 과연 구조조정에 앞서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정승일 박사는 "현대중공업은 해외에 공장을 지으면서도 고용을 유지하고 있지 않느냐"며 "선박수주로 상황이 달라진 만큼 재고용을 약속하고 생산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대 경영대의 한 교수는 "제 3자의 개입을 통해 정리해고 철회 등으로 사태가 해결되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라며 "오히려 이러한 봉합은 기업의 해외이전과 유출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제도를 통해 노사관계를 개선해 나가야지 정치권이나 재야가 개별 사업장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부산=김창배기자 kimcb@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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