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호 씨가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선다. 3년째 침샘암으로 투병 중인 그가 5년 만에 낸 소설 는 한 달여 만에 15만 부를 돌파했다. 그 신작을 들고 16일 오후 광화문 교보문고 사인회를 시작으로 전국 독자들과 재회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잠깐 사립문을 여는 일이다.
그 동안 신문ㆍ방송 보도를 통해 본 모습은 예상대로 늙고 수척했고 수술과 치료의 흉터가 남은 목을 목도리나 옷으로 가리고 있었지만, 예상과 달리 병과 함께 사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카랑카랑한 힘이 있었고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말씨는 담담해 보였다. 낄낄낄, 웃음도 그대로였다.
죽음 위에 선 제3기의 문학
그 자신의 말대로 이제 최인호 제 3기의 문학이 시작됐다. 1963년 등단 이후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했던 제 1기, 종교ㆍ역사소설에 치중했던 제 2기를 거쳐 자신의 본령인 현대소설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제 3기의 문학은 제 1기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그는 병을 얻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동안 새로운 자기호흡을 시작했다. 현대물과 단편소설에 맞는 호흡, 휴지(休止)와 여백을 용납하지 않는 스프린터의 호흡이 에 여실히 되살아났다.
아울러 제 3기의 문학이란 이번 작품처럼 쓰고 싶은 것만 쓰는 '나의 문학'이다. 어떤 외부의 주문이나 요구 없이 절대 독자이며 최고 독자인 작가 자신의 마음과 욕구에 의해 생산되는 문학은 그를 자유롭게 하리라. 아니, 자기가 쓰는 게 아니라 누군가 불러주는 말을 받아 적는 것 같은 글쓰기라니 원숙하고 자연스러운 경지이다.
"꽃이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피던가, 새가 박수를 쳐야만 울던가"하고 그는 묻고 있다. 무엇인가 스스로 구상하기보다 T S 엘리엇이 노래했듯 '기다림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영감과 계시, '그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걸 배웠다는 게 병이 그에게 준 선물이다.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시절과 인연에 맞춰 이룩된다. 그렇다. 무엇이든 시절과 인연에 맞게 생산된 것은 제 맛이 나며 떫거나 시지 않다. .
우리는 이 몇 년 새 박경리 이청준 박완서와 같은 좋은 작가들을 잇달아 암으로 잃었다. 문학계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5월 하순에 최인호 씨에게 난과 함께 카드를 보내 "용기를 갖고 희망을 갖고 기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념을 갖기 바란다"고 쾌유를 빌었다는데, 훌륭한 작가를 잃을지 모른다는 국민의 걱정을 대변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떠난 이들은 자신이 암이라는 것을 외부에 알리기 꺼려했고 알려진 경우라도 최씨처럼 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완성된 형태의 작품으로 들려주지 못했다. 에서 나는 곧 '나'가 된다. 주인공 K는 K1과 K2로 나뉘었다가 합체되어 온전한 K가 된다. 병상에서 겪은 세상과의 이별과 삶의 마감, 자기분열과 통합이 인상적이다. 작품은 두 달 만에 신들린 듯이 썼지만, '작가의 말'은 종전과 달리 거의 100번 가까이 고쳐 썼다는 데서 이 작품에 대한 그의 마음과 자세를 잘 읽을 수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린이는 받아쓰기부터 한다. 선생님이 왜 그 글을 불러주는지는 다들 몰랐지만, 최씨는 그때의 어린이처럼 되돌아가 누군가가 불러주는 글을 잘 받아쓰려 하고 있다. 소문난 악필이 끝내 걱정스럽지만 그의 글씨는 달라지지 않았고 단단한 획의 힘이 그대로다.
삶과 죽음 온몸으로 철저히
그가 병을 이기고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그러나 설령 그러지 못한다면 그 자신의 말처럼 원고지 위에서 삶을 마감하기를, 작가로서 순직하기를 바란다. 글을 온몸으로 배어 낳는 것처럼 죽음도 온몸으로 배어 남기는 것이다. 12세기의 선승(禪僧) 원오 극근(園悟 克勤)은 生也全機現(생야전기현) 死也全機現(사야전기현), 살 때는 삶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하여 그 전부를 죽어야 한다고 말했고, 최씨도 이 말을 깊이 새기고 있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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