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당 진용을 새롭게 개편하면서 민생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얼마 전부터 무상급식, 무상의료의 전면적 실시를 약속하고 있다. 2012년에 있을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통해 각 정당의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적 판단이 내려지겠지만, 우리나라 복지정책의 규모가 앞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국민들은 정치권의 이러한 민생정책, 복지정책에 크게 반기는 기색이 없는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성장 못 쫓는 고용의 후진성
사실 우리나라 복지제도는 지난 10년간 국민기초생활보호제도의 시행과 실업보험의 확대실시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했다. 2008년부터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근로장려세제 등 선진국 형 복지제도를 도입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의 일상은 안정되고 활기찬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저런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생활하고 있는 불안한 모습이다. 가정을 책임지고 꾸려가는 가장들은 구조조정의 매서운 바람이 언제 불어 닥칠까, 직장을 잃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직장을 나와 조그만 자영업을 시작한 중년의 가장들에게는 몇 년 버티기가 너무나 힘겹다. 첫 직장을 구하는 청년들에게 정규직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고, 직장을 구해도 특근에 잔업을 해야 겨우 필요한 월급을 받는다.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50~60대 장년층은 노동시장에 남아 더 일하려고 해도 주어지는 일자리는 저임금의 일용직이다. 여성 가구주들은 시간제 일자리에서 낮은 임금으로 힘들게 일하지만 생활고를 겪고 있다. 최근 노동관련 통계 자료에 근거해 그려 본 보통사람들의 일상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기업들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고용창출보다는 수익률을 중시하는 경영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경제는 성장해도 고용이 창출되지 않는 이유다. 기업들은 이 같은 전략이 우리 경제가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 믿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는 소극적이다. 정치권은 국민들의 불안한 생활을 복지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1차적인 복지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소득을 창출하는 데서 비롯된다. 복지정책이 국민들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려면, 먼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된 일자리에서 활기차게 일한다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일과 복지가 같이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 기업은 자신의 생산성과 수익에만 치중한 나머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고용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재벌과 대기업들이 고용창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민의 안정되고 활기찬 삶이 장기적으로 볼 때 수익성 높고 성장하는 기업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고용창출을 시장에만 맞기지 말고 양질의 직장을 공공부분에서 적극적으로 창출하도록 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맞는 출산, 보육, 요양 서비스를 확충하려면 이 분야에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는 복지제도는 만들되 서비스 제공은 민간에 맡기는 방식을 취해 왔다. 이제는 이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 공공부분이 복지 서비스 제공에 적극적으로 나서 일자리도 창출하고 복지수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민간에 비해 훨씬 인기가 좋은 국공립 어린이집은 공공부분이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복지분야뿐만 아니라 다른 공공분야도 고용창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 동안 축소되었던 공기업들의 신규채용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중소기업 지원 통한 고용창출 시급
보다 근원적으로는 고용창출의 원천인 민간기업, 특히 대부분의 고용을 창출하는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해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산업구조 또한 건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모든 분야가 고용창출에 함께 힘쓸 때 우리 사회의 장기적인 경제성장과 복지가 보장된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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