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과 미 공화당의 국가부채 증액을 포함한 재정적자 감축 협상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매일 머리를 맞대고 있으나 타결은커녕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 '설마' 했던 미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13일(현지시간) 2시간 동안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 공화당 지도부가 마주한 백악관 회동은 불신과 대립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도 접점을 찾지 못하자 "참을 만큼 참았다"고 소리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민주당 관계자는 "협상이 사실상 끝났기 때문에 나간 것"이라고 했으나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직이 끝장나더라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화를 내면서 협상종료를 선언하지도 않고 퇴장했다고 비난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종일관 대립했던 에릭 캔터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이 '나한테 덤빌 생각 하지마, 미국민에게 직접 얘기하겠다'고 한 뒤 나가버렸다"며 "감정에 휩싸인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이날도 이전 협상의 재판이었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복지혜택 축소 등 정부지출 삭감과 부유층 감세 폐지를 두 축으로 4조달러의 예산을 절감하는 '빅딜'을 주장했고 공화당은 "세금증액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지출 축소만으로 2조4,000억달러를 줄이자는 '스몰 딜'로 맞섰다. 뉴욕타임스는 캔터 대표가 정부지출 삭감에 초점을 둔 안을 제시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하게 반대했으며 분위기가 거칠었다"고 전했다.
협상은 파행을 거듭하는데 무디스는 이날 신용평가기관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을 신용등급 강등이 가능한 '부정적 관찰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발표했다. 무디스는 성명에서 "강등이 된다면 최상위 등급인 현재의 Aaa에서 전단계인 Aa로 떨어질 수 있다"며 "미국의 국가부채 상한 증액이 적절한 시기에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미국이 국채를 상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하원 청문회에서 "의회가 다음달 2일 부채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세계 경제에 심각한 충격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부채 증액에 실패할 경우 정부지출을 40% 줄여야 하기 때문에 가용자원을 국채 원리금 상환에 집중해야 하며 따라서 퇴직연금과 노인ㆍ빈곤층 의료비, 군인 급여 등의 지급은 중단될 수 밖에 없다는 비상 재정운용계획까지 밝혔다. 버냉키 의장이 처음으로 협상 실패를 가정한 '플랜 B'를 언급한 것에 대해 미 언론들은 "부채 협상이 그만큼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미국의 재정적자가 431억달러를 기록해 올해 회계연도 누적 적자액이 9,705억달러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7월 중이면 적자가 1조달러를 넘을 것이 분명해 2009년 이후 3년 연속 1조달러 이상 적자 행진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여야 지도자는 14일에도 만난다. 오바마 대통령이 협상시한으로 제시한 15일까지는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비상조치로 1년간 한시적으로 부채증액 권한을 부여하자는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제안이 14일 회동의 의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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