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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27·끝> '현대판 관요' 강진 청자박물관의 도예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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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27·끝> '현대판 관요' 강진 청자박물관의 도예가들

입력
2011.07.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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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필휘지의 손끝… 그리고 천 년 같은 기다림 '고려의 혼'이 응답하다

집에 못 들어간 게 벌써 며칠짼지 모르겠다. 작업실에서 쪽잠으로 버텨왔다. 전남 강진군청 청자박물관의 조유복(48) 조각실장의 이야기다. 청자박물관의 일년 중 가장 큰 행사인 강진청자축제가 코앞이라 일더미가 산더미다.

가스가마의 불길이 제대로 타고 있는지 지켜보며 밤을 보냈고, 동이 트고 난 뒤엔 다른 가마서 초벌구이한 도자기들을 꺼내선 새벽 출근한 동료들과 거친 표면을 다듬고 유약을 발랐다.

고려청자 재현하는 청자박물관의 강진관요

강진은 고려청자의 본향이다. 전국의 400여 개 되는 청자가마터중 200기 가량이 강진에 몰려있다. 대한민국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청자의 90%가 강진산이라고 한다. 지금의 청자박물관이 들어선 대구면 일대가 청자가마터 밀집지역이다. 당시 이곳은 하루도 가마 불이 꺼지지 않았을 거대한 청자 공업단지였을 것이다.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600년 넘게 청자의 처음부터 끝까지 시대별 흐름의 증거를 기록하고 있는 땅이다.

강진에서 처음 청자가 재현된 건 1978년이다. 문화계 인사와 지역 유지가 나서 77년 재현사업을 시작해 조기정 이용희 선생 등이 굴껍질, 소나무재 등을 주재료로 천연유약을 만들어 청자를 구워냈다. 이후 강진군은 86년 청자사업소를 만들어 본격적인 청자재현사업을 벌였다. 이렇게 ‘강진관요’의 역사가 시작됐다.

청자박물관 연구작업실에선 도예가 17명이 청자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전통의 청자기술을 복원, 재현하고 또 새로운 청자를 개발하는 연구소 기능을 하며 만든 도자기에 ‘강진관요’ 도장을 찍어 판매도 담당한다. 강진군의 20여 곳 되는 사설 민요(民窯)와 구분되는 관요(官窯)인 셈이다. 이들 모두는 군에서 채용한 공무원 신분이다. 고려나 조선시대 왕실의 자기를 책임졌던 관요를 현대에서 다시 불러낸 형태다.

연구작업동은 도자 제작 과정에 따라 여러 개로 나뉘어있다. 강진의 고령토로 도자를 빚을 흙을 만드는 수비실, 물레로 도자의 틀을 만드는 성형실, 물레 대신 동물 과일 등 사물의 본을 떠 빚는 상형실, 성형실과 상형실에서 나온 도자에 상감 등의 기법으로 무늬를 새겨 넣는 조형실, 초벌구이를 마친 도자에 유약을 바르는 시유실 등이다.

공방엔 팽팽한 긴장감만 가득

모두의 손은 바삐 돌아가는데 공방은 하루 종일 조용했다. 창문을 넘나드는 바람소리 외에는 조각칼 긁는 소리, 물레 돌아가는 소리, 시유실의 유약 물 떨어지는 소리뿐이다. 도자란 게 온전히 집중해야만 하는 일이다. 단 한 순간 삐끗하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성형이나 상형 도중 실수하면 다시 흙덩이로 뭉갤 수나 있다지만 무늬를 넣거나 초벌구이 한 도자를 매만질 때 자칫 실수하면 그냥 눈물을 머금고 폐기해야 한다. 가마에서 잘못 구워져 최종단계에서 작품을 깨버려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모든 과정에 신중 또 신중 해야 하기에 오랜 기간 한솥밥 먹는 친한 동료들이지만 일하는 동안에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공방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무늬를 깎고, 앙다문 입술로 정신줄을 붙잡는다. 조 실장의 유약 바르는 손놀림에선 부드러운 리듬이 흘렀다. 나비 날갯짓보다 부드러운 손놀림이어야 유약은 도자 위에 뭉쳐지지도 여러 겹 무늬를 남기지 않고 흙에 곱게 스며든다.

조 실장은 청자는 특히나 유약 입히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도자의 모든 부분에서 같은 빛을 내려면 유약 또한 같은 두께로 고루 묻혀야 한다. 유약이 너무 얇으면 가마불에 흘러내려 흙빛이 나고, 유약이 한곳에 뭉치면 멍들거나 눈물 흘린듯한 자국이 남는다.

청자 작업 중 또 어려운 게 상감무늬를 넣는 것이다. 세계도자사에 유일한, 고려 도공이 개발한 우리만의 기법이다. 도자에 무늬를 파고 그곳에 다른 색을 내는 흙을 채워 표면은 매끈하지만 입체적 문양을 내는 것이다.

조형실에선 매병에 학 그림을 새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먼저 가는 조각칼로 학의 몸통이나 날개, 소나무 문양을 파낸다. 그리곤 도자 전체에 백톳물을 바른다. 한번 얇게 바른 후, 마르기를 기다렸다 또 덧바른다. 문양에 백토가 가득 찰 때까지 수차례 반복해야 한다. 다음은 표면의 백토를 면도하듯 살살 벗겨낸다. 이후 학의 다리나 부리 등 짙은 색을 내야 할 부분의 문양을 파내고, 그곳에 철성분이 많은 적토를 발라 다시 표면을 매끄럽게 긁어낸다. 조 실장은 “백톳물 바르는 것도 오랜 경험과 정밀한 손재주가 필요하다”고 했다. 기포가 생기지 않게 바르는 것이 기술이다. 또 바른 백토나 적토를 깎아낼 때도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한번 상처가 나면 복구가 어렵다.

밤새는 줄 모르고 청자 기술 익혀

조 실장은 지금의 청자박물관이 있는 동네서 태어나 자랐다. 청자 귀한 줄 몰랐던 때 일이다. 사방에 널린 게 청자 파편들이었다. 깨지지 않은 것들을 주워다 엿을 바꿔 먹었고, 개밥그릇으로 사용했다. 바위 위에 청자조각을 올려놓고 돌멩이를 던져 깨뜨리는 것이 유년의 놀이였다. 그는 “지금 생각하면 참 무지했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나도 이런 청자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군 제대할 무렵 강진군이 청자박물관 전신인 청자사업소를 만들며 직원을 뽑는다기에 지원했고 지금껏 25년을 한길을 파고 있다.

초창기 청자사업소 직원은 6,7명 뿐이었다. 도자란 게 도제식으로 기법이 전수되는 분야다. 조 실장은 “예전만 해도 선배들이 기술을 잘 가르쳐주질 않았다. 그야말로 어깨너머로 배워야 했다. 선배가 만들다 버린 깨진 조각을 품고는 다들 퇴근한 저녁에 공방에 남아 그 모양대로 학도 파보고 원도 그려봤다. 한창 조각에 빠져있다 보면 등이 훤해지고 뒤돌아볼 때 동이 터있고 그랬다. 젊었고 배울 열의가 컸을 때 일이다”고 회상했다.

조 실장의 아내도 같은 곳에 다닌다. 함께 근무하다 마음이 통했고 21년 전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아내 윤민희(45)씨는 시유실에서 작은 잔들을 매만지고 있었다. 유약을 바른 그 잔의 생김새가 독특하다. 잔 아래쪽에 작은 구멍이 나있다. 일명 ‘원샷잔’이다. 술을 받으면 바로 다 비워야지 안 그러면 술이 새도록 만든 것이다.

청자박물관 입구의 전시장에선 이곳서 만든 ‘강진관요’ 마크의 작품을 판다. 큼직한 매병 주병은 100만원 이상도 나간다. 가볍게 청자박물관을 찾은 관광객들이 적은 돈으로 기념품으로 가져갈 만한 걸 고안한 게 ‘원샷잔’ 같은 것들이다.

각고의 노력 한달 만에 청자 한점 완성

오전 중 유약 입히기가 얼추 끝나가자 조 실장은 화목가마로 향했다. 청자박물관은 일년 중 6번 정도 화목가마를 땐다. 14일이 그 중 한 날이다. 가마를 때기 전 가마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불지피기 전날에는 작품을 각각 상자에 담아 가마 안에 쌓아놓아야 한다. 청자는 고른 빛이 생명이기에 직접 불길이 닿지 않도록 상자에 넣어야 한다. 상자 공간 때문에 작품 수도 60점 정도로 제한된다.

불을 지피는 이틀 동안은 꼬박 전 직원이 가마 곁을 떠나지 못한다. 전기나 가스, 기름가마의 경우 불 조절이 쉬워 한 명 정도만 지켜보면 되지만 화목가마는 변수가 많고 손가는 일도 많아 연구작업실 온 식구가 모두 비상 대기해야 한다.

화목가마에서 구워낸 청자가 제 빛을 잘 내기만 하면 그건 가스나 기름가마에서 생산된 청자보다 몇 배는 비싼 값에 팔린다. “다른 가마에서 구웠을 때 청자의 성공률은 80~90%이지만 화목가마는 20~30%밖에 되지 않는다. 구하기 쉽지 않은 땔감 값에다 며칠을 꼬박 달라붙어야 하는 노동의 수고로움, 전통방식 그대로의 재현이란 작품성 등에 대한 보상이 그 값에 포함된다”고 했다. 강진관요의 1년 매출은 7억원 정도인데 이중 20% 가량을 축제기간에 벌어들인다고 한다.

청자 한 점을 완성하는 데는 한달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 성형된 도자를 그늘에서 말리는 데만 일주일에서 보름이 걸린다. 지금 같은 장마철엔 더욱 느려진다. 매년 가장 일감이 많은 청자축제 직전이 장마철이라 조 실장 등 책임자들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이틀간 초벌구이를 하고 또 며칠 식혀야 가마에서 꺼낼 수 있다. 이를 유약을 묻혀 다시 재벌구이를 한 뒤 꺼내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가마 바로 옆 방의 보물창고 문이 열렸다. 그곳엔 지금껏 만든 청자들이 바닥과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1톤 트럭을 문 앞에 대고는 박물관 직원 정신일(38)씨가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청자들을 차에 실었다. 본격 전시를 위해 청자박물관의 저장 공간으로 옮기는 일이다. 한 달여 시간 물과 흙, 불이 빚고 구슬땀이 적신 보물들이 새 주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강진=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강진청자축제 30 일부터

강진청자축제는 이름난 축제다. 문화관광체육부로부터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지정 받았다.

올해 축제는 30일부터 8월 7일까지 대구면 청자박물관 일원에서 개최된다. 이번 축제는 바로 이웃인 장흥군의 정남진 물축제와 연계해 치러진다. 두 지자체가 축제를 공동으로 계획해 두 축제장간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괜한 경쟁에서 탈피해 서로 윈윈하기로 손을 맞잡은 것이다.

올해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국보급 유물 50점이 전시되는 '고려청자 천년만의 강진 귀향 특별전'이다. 다른 박물관이나 개인 소장 작품들을 삼고초려해 귀하게 모셔왔다. 일본에서도 두 점이 바다를 건너온다.

청자로 만든 편경으로 연주하는 음악회도 볼 만하고 전통 발물레로 도자기를 빚어보는 체험은 관람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너다.

봉숭아 손톱물들이기, 폐농기계 로봇타기, 바다낚시와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 개매기 체험, 바지락 캐기 등 체험장도 운영된다. 강진을 떠나 고려의 수도 개경으로 청자를 운송한 온누비호와 칠량 옹기를 운송했던 강진 옹기배를 직접 승선해보는 체험도 준비됐다.

축제기간 강진관요의 작품을 비롯, 강진 일대 도자업체들이 30% 할인된 가격으로 청자를 판매한다. 집에 청자 하나쯤 두고 싶은 이들에겐 좋은 기회다. (061)430-3194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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