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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시린 계곡물과 신비한 이끼 숲… 여름에도 Yes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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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시린 계곡물과 신비한 이끼 숲… 여름에도 Yes 평창

입력
2011.07.1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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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보려고 전북 김제로 향하던 길이었다. 7일 오전 폭우가 쏟아지는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을 달리고 있을 때 '데스크'에게서 결려온 전화 한 통. "어젯밤에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평창으로 결정됐는데…" "…" 만경강을 눈 앞에 굽어 보며 곱게 차를 돌려 상행선으로 갈아탔다. "어쩌란 말입니까"하고 실랑이 벌여 봐야 "뭘 어쩌긴? 몰라서 묻냐"는 대답만 돌아올 건 뻔한 이치. 어쩌랴. 모처럼 장거리 드라이브를 즐겨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서울에서부터 일곱 시간 쉬지 않고 빗길을 운전해 도착한 평창의 계곡. 죽죽 비 긋는 오후 하늘은 묵은 빨래를 헹궈 놓은 빛깔이다. 장마철 평일이라 피서객도 만나기 힘들었다. 하지만 "콸콸콸쿠엘콸" 쏟아져 내리는 장쾌한 물살! 찾아오는 길의 피로와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콱, 한 방에 얼려버릴 만큼 시원하다. '뭘 어쩔 수 없는' 소심한 갑근세 납부자가 좀체 느끼기 힘든 짜릿한 해방감. 그래서, 이런 객기가 동했나 보다.

'에라, 모르겠다. 마감이고 뭐고…'(풍덩!)

산이 깊고 눈이 많아 눈사람(눈동이)을 지역 마스코트로 내세운 평창군. 일찍부터 이런저런 스키 리조트가 들어섰고 그 덕에 동계올림픽 무대가 됐지만, 진녹색 여름 평창 역시 순백의 겨울 평창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산들이 겨울부터 속에 머금었던 눈을 더는 참지 못하고 토해 놓은 것처럼, 얼얼하게 시리고 맑은 물이 골짜기마다 굼실대기 때문이다. 피서 계획을 미처 세우지 못했다면 평창의 계곡을 떠올려 보자. 콸콸콸, 물굽이의 청량한 소리만으로도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시리도록 푸른 물, 흥정계곡

흥정계곡은 서울 쪽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갈 때 나오는 평창의 첫 번째 나들목 면온IC에서 북쪽으로 10분 거리에 있다. 6번 국도를 따라 봉평면 쪽으로 가면 이효석문학관을 지나게 되고, 얼마 안 가 흥정산(1,276m)에서 내려오는 시린 계곡물을 만나게 된다. 찾아가기 쉬운 만큼 사람 손을 많이 탔다. 십여 년 전까진 귀틀집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계곡변 도로에 펜션들이 빈틈없이 도열해있다. 한여름에도 섭씨 15도를 넘지 않을 정도로 시원해 여름 나기에 그만이기 때문이다.

비가 쏟아지던 7일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에 푹 젖은 티셔츠에서는 허옇게 김이 올랐고 물안개가 그런 풍경을 푸근하게 감쌌다. 물놀이가 아니라 마치 안개 놀이라도 하러 나온 모습이다. 왁자한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런 풍경을 마주하면 이끌리듯 물에 발을 담그게 된다. 찌릿, 차가운 계곡의 감촉이 척추를 타고 머리로 올랐다.

호젓한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된다. 폐교된 무이초등학교 흥정분교를 지나면 펜션이 띄엄띄엄해지다가 도로를 차단하는 시설물이 나타난다. 그리곤 시끌벅적한 행락인파로부터 완전한 격리다. 봄ㆍ가을에는 통행이 제한되는 길로 흥정산을 끼고 홍천으로 넘어가는 산길이다. 폭이 좁아진 계곡은 이 길을 따라 한참을 더 이어진다. 인적 드문 산속에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인데, 비안개에 싸인 채로 혼자 걷는 길은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 여기는 열목어, 산천어 등의 냉수성 물고기가 지천으로 사는 곳이기도 하다.

때묻지 않은 아름다움, 원당계곡

사람 때 묻지 않은 자연 계곡을 원한다면 원당계곡이 그만이다. 평창읍에 있는 백덕산(1,350m)에서 발원해 평창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다. 6km 남짓 길지 않은 길이에 그나마 일부는 자연휴식년(2013년 5월까지)으로 통행이 제한돼 발길이 뜸하다. 덕분에 쉬리, 모래무지, 어름치, 갈겨니, 버들치 등 1급수에서만 사는 물고기의 보금자리로 남아 있다. 이 일대는 예전부터 느릅나무가 많이 자생해 느릅골이라고도 불렸다. 계곡은 화전민들의 밭을 적시던 젖줄이었다.

투명하게 바닥이 들여다보이는 물에 발 담그고 있으면 그대로 탁족도(濯足圖)의 주인공이 된다. 모름지기 피서란 더위뿐 아니라 세사의 번다함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이 계곡이 제격이다. 계곡은 길지도 넓지도 않지만 고요함이 길어 올린 깊이를 맛볼 수 있다. 계곡을 감싼 원당마을은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전형적인 강원도 산골 마을이다. 장평IC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평창읍에 이른 뒤 뇌운계곡 상류인 평창강 방향으로 가면 닿는다.

유유히 굽이치는 물길, 금당계곡

장평IC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만나게 되는 계곡이다. 태기산에서 발원했지만 대화면 금당산(1,173m)을 끼고 돌아 금당계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찾아간 날은 장맛비에 불어난 물로 계곡이라기보다 누런 탁류가 굽이치는 하천에 가까웠다. 캐러멜 빛깔의 두툼한 물살이 큼지막한 바윗돌을 감싸듯 뭉실뭉실 넘어가는데, 척 보기에도 래프팅을 즐기기에 적합한 계곡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큰물이 지나가고 물이 본래의 빛깔을 찾고 나면 이 물길도 유장하게 흐르는 푸른 계곡의 면목을 보여준다.

금당계곡은 금당산뿐 아니라 거문산(1,173m), 대미산(1,232m), 덕수산(1,000m), 장미산(979m) 등에서 뻗어 나온 굵직한 능선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물줄기다. 그래서 자연 암벽과 협곡, 빽빽한 천연림이 계곡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빼어난 절경 탓에 일찍이 계곡변으로 길이 닦이고 유포리, 개수리 등 물가 마을에는 휴양시설이 들어섰다. 금당산의 원시림은 청소년들의 야생화 생태체험에도 좋은 교실이 된다. 장평IC에서 평창읍으로 가는 방향에 31번 국도와 갈라졌다 다시 합쳐지는 424번 지방도가 금당계곡변 도로이다.

푸른 이끼의 신비, 장전계곡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원령공주)'의 배경인 가고시마현 야쿠시마의 신비한 이끼 숲을 이국의 풍경으로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에도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지리산 실비단계곡, 태백의 상동계곡, 삼척의 무건리계곡, 그리고 평창의 장전계곡이다. 이 중에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곳이 장전계곡이다. 진부IC에서 진부면사무소 방향으로 나와 정선으로 이어지는 59번 국도를 타고 20여분 가다 보면 가리왕산(1,560m)을 앞에 두고 장전계곡에 닿을 수 있다.

차도에서 멀지도 않은 계곡이지만 돌이끼가 풍기는 신비한 기운은 강원도에서도 가장 깊숙한 오지에 온 듯한 착각을 준다. 이를 사진에 담으려면 삼각대가 필수다. 발 아래가 무척 미끄럽기 때문에 이동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끼를 훼손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필수다. 가까이 있는 오대천이나 수항계곡에 비해 아직 덜 알려져 있어 한적한 장소를 찾는 이들에게도 좋은 피서지다.

평창=글·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메밀꽃 필 무렵의 설레는 그 무대… 예스러운 평창

허생원, 조선달, 동이가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 속에 고개를 넘고 개울을 건너는 봉평 땅이 바로 평창의 일부이다. 하지만 이효석(1907~1942)이 단편 '메밀꽃 필 무렵(1936)'에서 그려낸 평창의 산과 들과 물은, 이리저리 깎아내고 요란하게 치장한 지금 모습과는 사뭇 달랐을 것이다. 2018 동계올림픽 개최로 돈과 사람은 더 사납게 달려들 게다. 그래서 평창 여행길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8일 지나친 평창의 하천은 주변 공사장에서 쓸려 나온 토사로 미숫가루를 되게 풀어 놓은 듯 우중눅눅하게 흘렀다. 펜션과 스키 슬로프에서 벗어난 평창을 소개한다.

두메산골 여행

평창의 예스런 멋을 느껴보고 싶다면 산골 마을을 잇는 코스를 따라가보자. 평창군이 추천하는 두메산골 여행길은 진부장에서 신기리, 새재, 봉산리, 자개골, 구절리역, 대기리를 돌아 용평리조트에 이른다. 길이 험해 사륜구동이 아닌 자동차는 진입하기 힘든 곳이 군데군데 있다. 되도록 가벼운 등산화를 신고 걷는 게 좋다.

진부장은 3일과 8일에 열리는데 여름엔 차진 맛을 자랑하는 옥수수가 그득하다. 장터를 벗어나 정선 방면으로 가다가 거문초등학교 신기분교 방향으로 꺾으면 두타산(1,394m)과 뒷덕산(934m) 사이 고갯길이 시작된다. 새재를 넘어 10km 가량 가면 금방 주저앉을 것 같은 함석지붕을 인 집들이 나타난다. 이 마을이 봉산리다.

봉산리 민박집에서 보낸 하룻밤은 잊기 힘든 추억이다. 직접 밭에서 딴 옥수수를 가마솥에 넣고 쪄 먹는 맛은, 패스트푸드에 길든 입맛도 충분히 사로잡는다. 평창과 정선 경계를 넘어 3km 정도 가면 나오는 자개마을은 1960, 70년대 풍광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시원한 계곡에서 발을 담그고 쉴 수 있는 곳이다.

문학ㆍ역사 기행

이효석을 기리는 시설이 봉평면에 여럿 있다. 봉평중학교 부근에는 기념공원과 생가 등이 있다. 화가 서예가 도예가들이 모여 2001년 폐교된 무이초등학교를 사들여 예술촌으로 만들었는데, 이곳에도 메밀꽃을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이 전시돼 이효석의 자취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메밀꽃 필 무렵'의 정취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역시 메밀밭이다. 봉평땅 곳곳의 메밀밭에는 7월 꽃이 피기 시작해 9월에 절정을 이룬다.

봉평마을 초입에는 봉산서재와 판관대, 팔석정 등 조선 시대 유적이 있다. 판관대는 신사임당(1504~1551)이 율곡 이이(1536~1584)를 잉태한 곳이고, 봉산서재는 그를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계곡 기암괴석 위에 앉은 팔석정은 조선 명필 양사언(1517~1584)의 글씨가 남아 있는 호젓한 정자다.

월정사와 상원사 적멸보궁을 깊숙이 품은 오대산은 우리 정신문화의 한 맥이 응결돼 있는 곳이다. 알 수 없는 인력에 이끌리듯 한국의 불교 문화는 예부터 오대산을 정신적 귀의처로 삼았다. 김성동 소설 (1979)에서 오대산으로 향하다 얼어 죽는 수좌의 이미지가 그것을 상징한다. 절 초입 전나무숲에서 마주치는 수행자 행렬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대관령 목장 여행

여의도 7.5배 넓이의 광활한 초지에 900두의 육우와 젖소가 풀을 뜯고 있는 삼양목장은 이 땅에서 가장 한반도답지 않은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워낙 넓은 탓에 한 번 찍힌 소의 발자국이 해가 지나도록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한다. 백두대간을 타고 넘어 온 시원한 바람이 멈추지 않는 고원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 풍경은 장관이다. 새로 들어선 양떼 목장에서는 200여 두의 양들이 풀을 뜯는 아기자기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양에게 직접 건초를 먹이는 체험을 할 수 있고 30여종의 야생 식물 군락도 관찰할 수 있다.

평창=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 여행수첩/ 평창

영동고속도로 면온, 장평, 새말, 속사, 진부IC에서 여러 계곡으로 이어지는 국도와 지방도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울에서 180여km 거리로 2시간 정도면 닿는다. 평창읍과 미탄, 대화, 장평, 진부, 횡계면에 각각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어 동서울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기 편하다. 기차를 타고 간다면 원주나 강릉역에 내려서 시외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평창터미널 (033)332-2407.

흥정계곡 입구엔 120종이 넘는 허브를 재배ㆍ판매하는 허브나라가 있어 허브를 이용한 각종 음식과 차를 맛볼 수 있다. 입장료 성인 7,000원 (033)335-2902. 오대천과 금당계곡, 뇌운계곡은 래프팅을 즐길 수 있는 계곡이다. 평창의 계곡은 비교적 좁고 낙차가 큰 폭류가 흘러 다이내믹한 스릴을 만끽할 수 있다. 오대산레저 (033)335-6623, 야호레저 (033)332-1117, 유미레저 (033)332-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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