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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패션(Passion)과 패션(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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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패션(Passion)과 패션(Fashion)

입력
2011.07.1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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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1929년 체코의 브르노에서 음대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시인, 소설가,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며 우리 인식의 차원을 업그레이드시켜준 밀란 쿤데라는 장편소설 '느림'에서 이렇게 말한다.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이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한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스마트 폰

내 손안에 스마트폰이 아직 멀쩡한데, 그것은 삽시간에 지나간 세대의 것이 되어 버린다. 통신 방식이 달라 한국과 일본에선 출시되지 않았던 아이폰 1세대가 처음 세상에 나온 때가 2007년 1월이었다. 미국 출장길에서나 가끔 접할 수 있었던 아이폰은 국내에서도 2009년 11월에 아이폰 3세대가 출시되어 지금 내 손안에 있다. 그런데 9월에 아이폰 5세대가 출시된다고 한다. 스마트 폰 시장에 또 다른 전운도 감돈다고 한다. 엄청난 속도로 차세대 제품을 출시하는 애플과 경쟁하기 위해 굴지의 회사들 또한 새로운 제품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더 새로운 스마트 폰을 구입한 만큼 우리도 스마트해질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 요즈음이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 세상은 절망적일 것이다.

#고속철

이 땅에 고속철(KTX)이 운행되고 있지 않을 때 일이다. 프랑스의 떼제베나 일본의 신칸센을 처음 타 보았을 때, 나는 속도 엑스터시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생활 속에서 익숙해진 고속철을 이용하면서는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KTX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속도 엑스터시에는 무감각해졌다. 아마 예전엔 떼제베나 신칸센을 처음 타보는 것 자체가 당시의 해외 여행자들의 패션(Passion)과 패션(Fashion)이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가끔 문제가 생겨 '속도 그 자체'를 보여주는데 실패하는 요즈음의 KTX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차세대 고속철에선 새로운 몰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KTX 안에서 스마트 폰으로 인터넷 세상을 유영하는 일은 이제 세상의 패션(Fashion)이 되었다.

#패션과 패션

나의 패션(Passion)이 세상의 패션(Fashion)이 되면 그건 대박일게다. 사실 그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보다 더 큰 대박이다. 로또 당첨으로 만들어진 벼락부자에게 당첨금액만큼의 패션(Passion)이 함께 하진 않는다. 비물질적인 속도 엑스터시에의 몰입과 우리가 지니고 가꾸는 패션(Passion)은 다른 것이 아닐까 싶다. 생활 속에서 세상의 패션(Fashion)을 잘 못 쫓아다니다 보면 나의 패션(Passion)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세상의 패션(Fashion)과 나의 패션(Passion)이 잘 조율되도록 도와주는 지혜로운 폰, 위즈덤(wisdom) 폰이 출시되어 우리에게 선한 벗이 되어줄 순 없을까. 만약 그런 일이 가능해져도 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김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미디어아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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