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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 새 시집 '물 위에 씌어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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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시인 새 시집 '물 위에 씌어진' 출간

입력
2011.07.1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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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의 시들 전부가 정신과 병동에서 씌어진 것들이다.'

이 구절로 시작되는 새 시집의 주인공은 최승자(59) 시인이다. 그는 지난해 8월 등단 31년 만에 첫 문학상을 수상한 자리에서 "이제 병원에 안 가도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10월께 아예 포항의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고 올해 초에는 경기 이천의 병원으로 옮겼다고 한다. 유일한 혈육인 외삼촌 없이는 타인의 면회가 허용되지 않는 그곳에서 써 내린 시 60편을 담은 시집 <물 위에 씌어진> (천년의시작 발행)이 13일 출간됐다.

지난해 1월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지성사 발행)으로 11년의 침묵을 깬, 최승자 시인의 귀환은 그를 기억하던 이들에겐 반가움에 앞서 슬픔과 충격을 함께 몰고 온 사건이었다. 치명적인 허무의 독으로 1980~90년대 숱한 젊은이들을 감염시켰던 이 특별한 시인이, 시의 시대가 저묾과 동시에 독자의 시야에서도 사라졌던 2000년대에 홀로 고시원을 전전하며 극도의 가난과 싸우고 정신적 질병까지 앓았던 사실이 새삼 알려졌기 때문이다.

몸과 정신의 벼랑 끝에서 돌아온 그가 환기시킨 것은 잊혀졌던 최승자란 이름 석 자만이 아니라 시적인 무엇이었다. <쓸쓸해서 머나먼> 은 지난 한 해만 1만 부 이상이 팔리며 근래 나온 시집으로는 가장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지난해 8월 지리산문학상과 11월 대산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하며 문단 안팎에서 따뜻한 환대를 받았고 시 낭독회를 열기도 했지만 그의 병은 진행형이다. 천년의시작의 김태석 대표는 "평소엔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괜찮으신데, 때로 환청이나 환각 증세가 있는 것 같다"며 "어제 시집 출간 건으로 통화했는데, 웬만하면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만 외출이 안 돼 못 나온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침묵의 그 기간 서양 신비주의와 노장(老莊) 사상을 공부했다던 얘기대로 새 시집에도 노자와 장자, 허무에 대한 언급이 많다. '노자의 눈물과/ 장자의 한숨 사이에서/ 나는 숨을 죽인다'('어느 날 어느 날' 중), '지극한 無로서의 虛를 위하여/虛無가 아니라 無虛를 위하여/허름한 생각들은 아주 훌륭한 옷이 된다'('하늘 도서관' 중).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더 쓸쓸한 날에는 장자도 有毒(유독)하다"며 "그렇게 쓸쓸해 할 때의 나는 始源病(시원병)에 걸린 나이다. 정신분열증 환자가 始源病이라는 또 다른 증세까지 겹쳐 앓고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의 독성은 예전에 비해 오히려 묽어졌고 시어들도 한결 간결하고 투명하다. 시집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예전의 그 격렬했던 자기 부정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詩는 가장 여리고/ 詩는 가장 맹독성이다.'('神은 오후에 하늘은 밤에'중) ' '한없이 여린'을 찾고 있다/ 폭염과 혹한 그 너머에 있는/ '한 없이 여린'을 찾고 있다'('한 없이 여린' 중)

'가장 여리면서 가장 치명적'이랄 수 있는 시인의 몸이 갇힌 곳은 여전히 정신 병동이다. 이곳에서 부쳐진 이 시집은 그러니까 아직은 그가 반쪽밖에 돌아오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산물일 것 같다. '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다시 돌아왔지만/사프란으로 떠난 그녀는/ 영영 돌아오지 않으려 한다'('나는 다시 돌아왔다' 중)는 구절처럼.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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