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2,000원이 넘었네."
12일 오후 2시께 서울 강남에 위치한 SK주유소. 기름을 넣으러 온 운전자가 '보통 휘발유 ℓ당 2,299.45원'으로 된 가격 표시판을 바라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얼마나 주유할까요"라고 묻는 직원에게"6만원어치만 주세요"라고 말하고는 채워지는 기름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용량이 27ℓ에도 훨씬 못미쳤다. 그는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6만원에 30ℓ가 넘었는데 이 정도로 크게 줄었다"며 "정유사들이 말로는 가격을 조금씩 올린다고 하더니, 실제로는 크게 올린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기름값이 다시 뛰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최근 국제 유가와 환율 등을 감안해 휘발유 값이 ℓ당 2,000원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서울은 이미 심지적 마지노선으로 간주된 2,000원을 훌쩍 넘긴 상태. 국내 정유업계 1,2위인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주유소 공급 가격을 12일 40원 가량 올리면서 기름값 고공행진이 재연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생활 물가 인상으로 가뜩이나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부담감은 전례 없이 크다. 주유소에서 만나는 운전자마다 한 목소리로 "이제 더 이상 차 못 갖고 다니겠다"고 성토했다.
12일을 기준으로 정유업계의 가격 인상분을 주유소들이 고스란히 판매 가격에 반영하면서 기름값 100원 할인 조치 전인 4월6일 수준으로 돌아갔다. 더욱이 정유사들이 가격 할인 기간(4월7일~7월6일)에도 당초 약속대로 100원을 다 내리지 않은 채 찔금찔끔 인하하더니, 가격을 환원할 때는 큰 폭으로 올리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정유사들과 주유소들은 소비자의 불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수익구조만을 탓하고 있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이날 공급가격 책정은 국제 석유제품 가격 상승과 환율 등을 고려해 지난주 인상분이 40원 가량 발생한 것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원유 가격이 올라 수익이 악화돼 공급 가격을 어쩔 수 없이 올렸다는 얘기다.
SK에너지 직영 주유소의 한 관계자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ℓ당 45원, 23원 오른 1,879원, 1,693원으로 공급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의 GS칼텍스 주유소 사장도 "오늘부터 휘발유는 ℓ당 39원 올라 1,877원, 경유는 21원 상승한 1,694원에 공급받는다"고 전했다.
사실 국제 유가 흐름이 국내 기름값 인상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국내 휘발유 값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이 이달 들어 급등했다. 7월 첫째주 가격이 6월 다섯째주 대비 7.44%(1배럴당 5.8달러)가 올랐다. 불과 1주 만에 6월 한 달간 3.4%가 하락한 것에 비해 두 배 이상 오른 셈이다.
두바이유 현물가격도 8일 기준으로 사흘 연속 상승해 한 달 만에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섰다.
문제는 앞으로도 당분간 기름값이 내릴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오르는 양상이다. 서울 지역 주유소들의 휘발유 판매 가격은 이날 오후 3시께 2010.96원이었으나, 불과 두 시간 만인 5시께 2012.25원으로 뛰었다.
때문에 당분간 기름값 2,000원 시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정유사들이 기름값을 단계적으로 환원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12일 "현재로서는 기름값을 떨어트릴 다른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국제유가의 추이를 지켜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사이트 오피넷(www.opinet.co.kr)에 따르면 12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ℓ당 3.83원 오른 1,927.03원으로 집계됐다.
유인호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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