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발생 해역인 필리핀 동쪽 해상에 대기 불안정 현상이 보이지만 구름이 조직화돼 있지 않아 태풍 발생 가능성은 낮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다들 집에 가서 다리 뻗고 주무셔도 되겠네요."
장마로 장대비가 쏟아지던 6일 오후 제주 서귀포시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국가태풍센터 2층 상황실. 김태룡 국가태풍센터장의 농담에 20여명의 직원들도 모처럼 활짝 웃었다. 이례적인 6월 태풍 메아리로 서둘러 신고식을 치른 탓에 태풍센터 직원들도 예년보다 일찍 24시간 밤샘 근무에 돌입한 상황. 생각지 못한 강행군에 녹초가 된 직원들은 태풍 걱정 없다는 소식에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법. 김 센터장은 "사실 이런 평화로움이 익숙지 않다. 폭풍 전야 고요를 즐기는 불안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태풍예측이 어려운 이유
메아리가 한반도로 접근하던 지난달 26일만 해도 예측불허의 상황전개에 태풍센터 직원들은 혼비백산이 됐었다고 한다. 당시 시속 30km를 유지하던 메아리의 속도가 서서히 빨라지더니 한반도로 다가오면서 시속 70km까지 올라간 것. 이대로라면 한반도 상륙 시점이 수시간 앞당겨지는 상황. 작년 9월 태풍 곤파스가 예상보다 빨리 한반도에 도착해 인천 등 수도권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던 악몽이 떠오른 터라 직원들의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서둘러 서울 기상청 국가기상센터에 영상회의를 요청, 위성 데이터를 공유하고 긴급회의를 열었지만 10여명의 베테랑 예보관 누구도 선뜻 메아리의 과속 운행 원인을 찾지 못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원성희(33) 연구사는 "10년 넘게 태풍을 연구했지만 태풍은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옆에 있던 김 센터장도 한마디 거든다. "태풍 예측은 우리들 사이에서 '나비효과'라 부를 만큼 어려운 일"이라며 "작은 오차가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되다 보니 나중 가서는 엉뚱한 자료가 도출되는 경우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태풍센터는 전시상황실?
한반도 최전방 태풍 감시초소인 국가태풍센터는 태풍이 북위 28도 위, 동경 132도 오른쪽의 '비상구역(한반도가 태풍에 직접적인 영향권에 드는 범위)'에 도달하는 순간 전쟁터로 변한다. 직원들은 곧바로 24시간 비상체제에 돌입, 매시간 예보업무를 시작한다. 슈퍼컴퓨터 3호기에 접속해, 모니터로 전송된 각종 기초자료를 제공받아 태풍의 이동경로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게 임무다. 그래서 35평 규모의 2층 상황실은 전시 작전 상황실이나 다름없다. 가로 5.5m, 세로 2m 크기의 대형 모니터에는 천리안 위성뿐 아니라 중국 일본 미국 등 각국에서 보내온 위성사진이 펼쳐져 있다. 12개 모니터엔 해수면 온도와 일기도 등 각종 기상정보가 실시간으로 들어와 있다.
태풍 작전이 전개되지 않을 때도 직원들이 분주하기는 마찬가지. 세계기상기구의 지역특별기상센터(RSMC)에서 태풍이 발생했다는 통보가 오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태풍이라도 연구 데이터 축적을 위해 주시하며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2년 태풍 루사와 이듬해 태풍 매미의 공습으로 10조원이 넘는 피해를 본 뒤 2008년 기상청이 태풍 연구 및 예측 능력 강화를 위해 설립된 태풍센터는 일천한 연륜만큼이나 장비와 인력 면에서 보완의 여지가 적지 않다. 직원들은 특히 태풍의 꼭대기에서 내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드롭존데' 등 첨단장비의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올 여름 슈퍼태풍 2~3개 더 상륙
6월 태풍이 오면 평년보다 더 많은 태풍이 분다는 속설이 있는지라 요즘 태풍센터 직원들의 긴장감은 더하다. 실제로 태풍 이동경로인 동중국해 수온이 상승했고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수온도 현재보다 2.5~4℃ 높아져 2, 3개의 슈퍼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태풍센터의 예측이다. 김 센터장은 "최근 3년 간 피해가 크지 않다 보니 태풍의 존재를 많이 잊은 것 같다"며 "최전선에서 서 있는 만큼 더 눈을 부릅뜨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귀포=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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