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들어 의원들의 법률안 발의 건수가 역대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서는 등 의원 발의가 급증하고 있지만 정작 본회의 통과 법안은 12% 가량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여야 의원들이 실적을 내기 위해 '거품 발의'를 하면서도 정작 법안 심의 및 처리에서는 태업을 하고 있다" "최소한의 수준을 갖춘 법안을 내놓아야 한다" 등의 비판론이 쏟아지고 있다.
12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8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발의한 법률안은 모두 1만413건. 15대와 16대에 각각 1,144건과 1,912건에 불과하던 의원발의 법률안은 17대 국회 들어 6,387건으로 늘어났고, 18대 국회에선 임기를 9개월여 남겨두고 1만건을 넘어섰다.
이 같은 의원 발의 법안 폭증은 17대 국회 이래 의회문화 변화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16대 국회 말부터 시민단체들이 법률안 발의 건수 등을 계량화해 의원들을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너도나도 입법에 나섰다"고 말했다. 17대 국회 이후 대거 진출한 여야의 초선 의원들이 앞다퉈 법안 발의 경쟁에 나선 것도 한 이유로 분석된다.
입법이 국회의 중요한 기능이란 점에서 이 같은 추세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문제는 발의 법안의 본회의 통과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5대 국회의 경우 의원 발의 법안 통과율은 40.3%에 이르렀지만 16대에는 27.0%에 머물렀고, 17대에는 21.2%로 떨어졌다. 18대 국회에서는 발의 법안 가운데 1,282건만이 본회의에서 통과돼 12.3%에 그쳤다. 각 상임위에 계류된 법안은 5,996건에 달한다.
복지나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법안들이 면밀한 비용 추계 등을 거치지 않은 채 만들어지다 보니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순히 실적 높이기 목적에서 발의되는 법안이 많아진 것도 저조한 통과율의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법안 자진 철회 건수도 18대 국회 들어 471건으로 17대(86건)보다 급증했다.
지난해 A의원의 경우 자연보호운동 단체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하는 취지의 법안을 8월에 발의했다가 철회한 뒤 10월에 문구만 하나 바꿔 다시 제출해 눈총을 샀다. B의원의 경우 법안의 일부 표현, 오탈자만을 찾아내 개정안을 제출하는 방법으로 발의 실적을 올렸다. '거품 발의'로 각 상임위에 계류 법안이 쌓이다 보니 중요한 법안 처리에서 차질이 빚어지는 등의 문제점도 낳고 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의원 발의가 늘어나는 추세는 긍정적이지만 질적 향상을 위해 의원들이 법안 성안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시민단체들도 의원 평가 방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도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는 이런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고 반성해야 한다"며 "미해결 법안이 남지 않도록 상임위 활동에 매진해달라"고 말했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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