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남수단공화국 탄생이 화제다. 9일 독립을 선언하고 193번째 유엔 회원국이 됐다. 우리에게 수단이라는 나라는 얼마만큼 알려져 있는가.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에서 눈물을 흘리던 불쌍한 흑인들이 사는 곳 정도가 먼저 떠오른다. 다음으로 '무슨 사태'가 발생해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하고 이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사태 진정에 적극 개입하여 국제적 신뢰를 쌓았다. 2003년 '다르푸르 학살 사건'이다.
눈물을 흘리던 톤즈 주민들이 있는 곳이 남수단이고, 학살을 자행했던 군인들은 '그냥 수단'쪽에 소속돼 있었다. 수단의 남부지역이 남수단으로 공식화하자 그 북쪽에 있는 나머지 지역은 자연스럽게 북수단이란 국제적 명칭을 얻게 됐다. 톤즈 주민과 학살 사건이 오버랩되면서 남수단은 '착한 나라', 북수단은 '나쁜 나라'로 인식돼 있었다.
북수단의 '약속 이행' 평가해야
양쪽 수단은 1955년부터 18년 간의 1차 내전, 잠시의 평화, 23년 간의 2차 내전을 겪으며 250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 대부분이 남수단 쪽에서 발생했다. 50년 넘게 분리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살파 키르 마야르디트 남수단 대통령 등 수단인민해방운동(SPLM) 지도자들을 국민적 영웅으로 받들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노력을 높이 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뉴스의 와중에 북수단 대통령의 언행에 관한 간략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나쁜 나라'의 오마르 알바시르 북수단 대통령은 9일 남수단의 독립 선포식에 참석해 "남수단의 성공이 곧 (북)수단의 성공, 남부 수단인들의 (분리독립)의지를 존중한다"고 선언했다. 이 자리에서 남수단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고통과 죽음을 잊어선 안되지만 용서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수단 대통령은 다르푸르 학살 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돼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되어 있는 상황이다. 수단의 2차 내전 내내 22년간 권좌를 지키며 남수단에 대해 숱하게 많은 나쁜 짓을 자행하거나 묵인했던 장본인이다.
북수단 대통령이 남수단의 독립 성공을 기원하고 분리 의지를 존중한다고 밝힌 것은 6년 전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 2005년 1월 북쪽의 수단정부군과 남쪽의 인민해방군을 대표해 부통령과 의장이 평화협정에 서명했다. 6년 후인 2011년 1월에 남수단 주민들의 투표로 분리독립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콜린 파월 미 국무부장관과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이 지켜보는 자리였지만 국제사회는 일단 내전을 멈춰 희생을 막고 보자는 생각이었지 실제로 6년 뒤에 그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믿는 쪽은 거의 없었다.
평화협정이 체결된 지 정확히 6년이 지난 올해 1월 남수단 주민들끼리 투표를 하여 99%의 절대적 찬성이 나왔을 때만 해도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회의적이었다. 실제로 남ㆍ북수단의 경계선에선 주민투표 이후에도 전쟁과 학살이 끊이지 않았고, 바로 지난달 말엔 평화협정을 감시하던 유엔군 헬기까지 수단정부군의 공격을 받았다. 1차 내전 이후의 평화협정이 깨진 뒤 발생한 2차 내전에서 더 혹독한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북수단 대통령이 순순히 오래 전의 약속을 이행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남수단의 "용서 선언"이 부럽다
북수단 대통령의 약속 이행은 사실상 국제적 압력에 대한 항복선언이며, 더 이상 버티다가는 본전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일 터이다. 남수단공화국의 독립은 99%가 주민들의 희생과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이뤄진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나머지 1%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앞으로 남ㆍ북수단이 진정한 이웃 국가로 자리잡아 공존해 가는 핵심적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한 1%의 소중함을 가장 먼저 인식한 곳은 남수단이다. 고통과 희생을 잊어선 안되지만 용서 또한 중요하다는 선언이 그것이다. 적과의 약속이라도 지키겠다고 하고, 피해자 쪽에서 먼저 용서라는 말을 꺼내는 모습이 부럽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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