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46)씨는 걱정이 많았다. 20대를 "치기 어린 시기"로 기억하는 그는 18년 전에 쓴 극본 '황구도'가 15일부터 무대에 오르는 것을 쑥스러워 했다. 1993년 초연 이후 이듬해 재연하고 1999년에 뮤지컬로 공연한 게 마지막이었다. 극단 작은신화의 창단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극단 대표 최용훈씨가 연출한다.
공교롭게도 조씨가 극작ㆍ연출을 맡아 9월에 공연하는 연극 '됴화만발'(가칭)도 8년 전에 써놓은 작품이다. 그는 "오랜만에 선보이는 연극 신작인데 스토리텔링 중심이 아니어서 조금 겁이 난다"고 했다. 사실 그가 골치 아픈 것은 두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뮤지컬 극작과 연출도 활발히 하는 그는 최근 한 일간지 주최 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극본상을 받았다가 뒤늦게 수상 거부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됴화만발'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_황구와 스피츠의 사랑이라니, '황구도'의 설정이 독특하다.
"처음 발표한 1993년에는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이미 다양한 작품을 접해 본 요즘 관객에게는 개를 의인화한 사랑 이야기가 조금 순진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열정은 앞서는데 사랑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20대 후반에 썼다. 그 때도 미완성이라고 생각했던 터다."
_그럼 어떤 변화를 줬나.
"황구 아담은 스피츠 캐시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지만 주인의 강압으로 다른 스피츠인 거칠이에게 캐시를 뺏긴다. 질투심을 이기지 못한 아담이 자기 다리를 돌로 찧는 장면이 있다. 그게 감상적인 자기 토로 같고 작위적인 듯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죽음을 통해 진짜 사랑의 행복을 완성했다고 믿는 늙은 개 커플의 에피소드 '완벽한 3일'을 추가했다. 그 장면이 18년 세월의 간극이자 내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_그때와 비교하면 창작 환경도 많이 달라졌는데.
"예전에는 돈이 없어도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논리가 사회 전 분야를 지배하는 지금은 대관료는 물론이고 무대를 꾸미는 미술 재료, 하다 못해 연습하는 두 달여 동안 먹을 라면값마저 너무 올랐다. 창작자들이 자본이 뒷받침 된 해외 콘텐츠와 부대끼는 경험을 통해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조차 절대 부족한 시대다."
_그래서 "최악 아닌 차악으로 선정했다"는 뮤지컬 시상식 관련 칼럼이 더 불편했던 건가.
"국내에서 공연된 세계 명작 뮤지컬들과 비교한다면 내 작품이 당연히 부족하다. 부족함을 알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하지만 자꾸만 '넌 안돼' 하면서 자존심을 짓밟으면 창작자로 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지금 뮤지컬계가 특히 그런 분위기다."
_시상식에서 뮤지컬 제작 환경의 어두운 현실을 토로한 게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금 한국 뮤지컬, 위험하지 않나? 제작자들이 우수 창작인을 키울 생각은 없이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해외 인력을 무작정 끌어들이고 있다. 뮤지컬 '모비딕'의 연출자 조용신씨가 내건 '독립뮤지컬'이란 말에 크게 공감한다. 상업논리에 억눌린 창작자들에게 대안의 희망을 주는 개념이 아닐까. 자고로 역사에서도 위에서 바꾸지 못하면 아래서부터 바꾸지 않았나."
_9월에 공연하는 '됴화만발' 준비는 잘 돼 가나.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내용이 아닌 '영생불사'가 모티프라 걱정이다. 그래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며 모험하는 요즘 같은 때가 창작자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연극 '황구도'는 15일부터 8월 28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필링 2관(옛 이다2관)에서 공연된다. (02)762-0010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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