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감사원과 고등교육기관을 대표하는 대학의 연관성을 찾기란 쉽지않은 노릇이다. 서울대처럼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야 정부 통제를 받기 마련이고, 이런 맥락에서 특정 사안을 감사원이 감사해도 할 말이 없다. 눈 딱 감고 감사원 처분만 기다리는 게 국립대의 처지다. 그런데 얘기가 사립대로 옮겨가면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사기업처럼 개인이 재산을 출연해 만든 사립대를 손볼 수 있는 곳은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 등 사학 관련 법령을 다루는 교육부밖에 없다. 사학 비리가 불거져 나오면 교육부가 조사든, 감사든 어떤 식으로든 칼을 빼드는 이유다.
초유의 대학 감사 칼 빼든 감사원
이런 '사학 감사의 법칙'은 불변으로 믿어졌지만 그게 아니었다. '반값 대학 등록금'이라는 돌출 변수 하나가 감사원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비싼 등록금이 정치ㆍ사회적인 이슈로 비화하자 느닷없이 감사원이 나서 대학재정감사라는 급조된 카드를 꺼냈다. '재정감사' 용어를 택함으로써 대학의 돈 문제를 훑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지만 진짜 속내는 등록금 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등록금 감사라고 봐야 옳다.
감사원의 수장인 양건 원장이 그런 입장을 발표한 게 지난달 10일이었고, 그로부터 한 달이 조금 안 된 지난주 목요일부터 예고한 대로 예비감사 회오리가 대학에 불어닥쳤다.
공공기관 감사를 전담해 온 감사원이 대학 감사에 들어가기까지 한 달여 동안 무엇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졸지에 피감(被監) 대상이 된 30개 대학을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선정했는지 단 한 마디도 밝힌 적이 없다. 감사 전날 밤 해당 대학에 "내일부터 감사 나갈테니 준비하라"는 통보를 한 게 전부다.
적어도 감사에 들어가기전까지 보여준 감사원의 이런 모습은 무슨 수사기관 같다. 감사란 보안이 최우선돼야 하는 영역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감사할 대학이 미리 알려질 경우 예상되는, 이를테면 감사 무마 압력 따위의 파장을 감사원 입장에선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감사원은 투명감사라는 정공법을 택했어야 했다. 사실 등록금 감사 총대를 감사원이 멘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시각이 있다. 사학의 재정 문제를 들여다볼 권한이 감사원한테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감사원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인력을 차출해 '감사 들러리' 세우는 일종의 편법을 쓰면서 법적 근거 시비를 겨우 벗어났다.
대학 재정 감사는 양건 원장이 각본을 썼고, 감독 또한 그의 몫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양건 식 등록금 감사'라는 얘기도 들리는 모양이다. 그는 교수(한양대 법대) 출신이어서 누구보다 대학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여기는지 모르겠다. 대학 재정의 여러 문제 역시 꿰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감사 이후가 왠지 불안하다. 감사원은 이르면 9월 중에 실시될 본감사에 앞선 예비감사라는 단서를 달면서 대학들을 '안심'시키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립서비스에 다름 아니다. 예비감사가 본게임일 가능성이 높다. 20일 정도 되는 감사 기간 중에 이번에 걸려든 대학을 집중적으로 털어낼 것임은 안 봐도 안다. 200명이 넘는 감사인력들이 흡사'저승사자'처럼 덤벼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감사원 입장에선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일부 부실 사학은 의도대로 두들길 수 있겠으나, 조직이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재정 운용 또한 견실한 상당수 대학한테서 얻어갈 것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교육계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털어내기식 감사는 후유증만 부를뿐
양 원장은 자신도 수습하기 어려운 '괴물'이 돼 버린 사립대 감사 실험판을 벌여놨다. 당연히 감사팀에 실적을 채근하겠지만 뜻대로 안 될 것이라게 딜레마다. 해법은 옥석을 가리는 정치(精緻)한 감사뿐이다. 사학을 들여다본 경험이 전무하고, 법적인 논란 역시 불거진 상태에서 강행된 감사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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