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묵정동에 직장을 가진 박영훈(36)씨는 점심시간이 되면 인근 동국대 학생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박씨는 학생식당에서 2,200원 하는 1식4찬(밥, 국, 반찬 3종) 백반을 먹는다. 박씨는"가격도 싸고, 메뉴도 매일 다르고, 맛도 다른 식당에 비해 손색이 없다"며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대학식당은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직장인들에게는 좋은 점심식사 장소 같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인의동 혜화경찰서 근처 회사에 근무하는 김영수(40)씨도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동료와 함께 혜화서 구내식당에서 3,000원에 점심을 해결한다. 김씨는 "4월부터 직장 동료와 혜화서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경찰서 식당이라 눈치도 보이고 불편했는데 가격도 싸고 1식5찬이 나와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시간에 매일 이곳을 찾는다"며 "사무실 주변 일반 식당은 한끼에 보통 7,000원이 넘기 때문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냉면 한 그릇에 1만원이 넘는 등 치솟는 물가에 점심 한 끼 해결도 버거운 직장인들이 상대적으로 값이 싼 대학식당과 경찰서 등 관공서 구내식당에 몰리고 있다. 월급은 오르지 않는 상태에서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점심값을 감당하지 못한 고육지책이다.
주5일 근무를 하는 박씨는 점심값으로 한 달 평균 16만원 정도를 썼다. 그러나 대학 구내식당을 이용하면서 지금은 넉넉잡고 5만원이면 충분하다. 박씨는 "5월부터 구내식당을 이용하고 있는데 두 달 동안 점심 값으로 20만원을 절약했다"며 "한 달에 2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는 내게 대학식당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라고 말했다.
동국대 식당 관계자는 "하루 평균 800장의 식권을 판매하는데 그 중 20% 정도가 직장인 등 외지인들에게 나간다"며 "처음에 대부분 혼자 오던 사람이 나중에는 동료 여러 명과 같이 오는 바람에 이용객이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서 구내식당은 뜻밖의 호황에 정작 점심시간이면 경찰관들이 앉을 자리가 없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성북서 관계자는 "100석 가량 되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에 200여장의 식권을 파는데 이중 60%는 외부인이 구입한다"며 "앉을 자리가 없어 불평도 하지만, 그렇다고 외부인은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직장인들이 대학 및 관공서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 3월 남녀직장인 1,226명을 대상으로 '점심 비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6.8%가 점심값이 올랐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서울의 유명 음식점들은 올해 들어 가격을 1,000원 이상씩 올리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냉면 전문점 가운데 한 곳인 W식당은 최근 값을 1만원에서 1만1,000원으로, 설렁탕 전문점인 을지로2가 Y식당은 한 그릇에 8,000원에서 9,000원으로 올렸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명동의 한 칼국수집도 최근 값을 8,000원으로 1,000원 올렸다. 한 직장인은 "냉면, 설렁탕 값이 5,000~6,000원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매년 1,000원씩 올라 이제는 고급 음식이 돼버렸다"고 울상을 지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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