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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우리 안의 루퍼트 머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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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우리 안의 루퍼트 머독'

입력
2011.07.1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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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언론은 서구 언론의 모델로 불린다. 권위 언론의 품격은 옛'언론 제국'명성에 걸맞게 여전히 으뜸이다. 일간 가디언과 더 타임스, 파이낸셜 타임스(FT), 주간 이코노미스트, BBC 방송 등과 견줄만한 언론은 세계에서 몇 안된다.

그러나 영국에는 '가장 좋은 신문'과 '가장 나쁜 신문'이 공존한다. 거리 판매에 의존하는 타블로이드판 대중지는 스캔들 범죄 섹스 스포츠 등 대중의 호기심에 영합하는 황색 저널리즘에 몰두한다. 그'막장'선정성은 어느 나라 언론도 넘보지 못한다.

황색 저널리즘의 무차별 도청

대표적 타블로이드 신문 더 선(The Sun)과 일요신문 뉴스오브더월드(News of the World)는 각기 발행부수 300만부에 가깝다. 권위지의 거의 10배에 이른다.'미디어 황제'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두 황색 신문만 뭉뚱 그려도 매일 영국 성인의 15%가 선정적 기사와 사진을 읽고 본다.

영국 신문의 양극화는 치열한 시장경쟁의 결과다. 2차 대전 때의 경쟁 제한이 풀린 1950년대 말부터 30여 년 사이, 이념과 독자 계층 및 발행부수에서 '중간'에 있던 신문 10여 개가 사라지거나 빛을 잃었다. 비싼 광고만으로 생존할 만큼 권위 있거나, 가판 수입으로 살만큼 부수가 많은 곳만 살아남았다.

호주 태생인 머독은 1960년대 더 선과 뉴스오브더월드를 인수, 신문시장의 무한경쟁을 선도했다. 상업성을 앞세운 그는 70년대 말, 제작공정 현대화와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강성 신문인쇄노조와 끝까지 맞섰다. 이 싸움은'영국병 치유'를 외친 대처 총리의 보수혁명과 맞물렸다. 여기서 승리한 머독은 1981년 더 타임스를 인수, 미국과 아시아에 걸친 미디어 제국의 기틀을 다졌다.

머독 제국을 떠받친 '가장 나쁜 신문'뉴스오브더월드가 그제 종간호를 내고 168년 역사를 마감했다. 2005년 처음 불거진 도청 스캔들, 휴대폰 해킹 파문을 끝내 감당하지 못한 결과다. 이 신문은 당시 윌리엄 왕자 등 왕실 인사들의 휴대폰 음성메시지를 해킹, 신상과 스캔들을 특종한 사실이 드러나 연루된 기자가 형사처벌을 받았다.

언론불만처리위원회(PCC)와 의회도 진상을 조사했으나 돌출한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가디언이 앞장 선 오랜 추적 끝에 전모가 드러났다. 뉴욕 타임스도 가세했다. 폭스 TV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미디어 시장을 새 본거지로 삼은 머독 제국의 음습한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서다. 그 결과, 뉴스오브더월드는 사립 탐정을 고용해 유명 정치인과 연예인, 스포츠 스타, 군과 경찰 고위층 등 수천 명의 휴대폰을 해킹한 혐의가 확인됐다. 또 센세이셔널한 범죄 피해자와 해외전몰장병 유가족을 해킹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2002년 유괴된 13세 소녀의 휴대폰 해킹은 국민적 분노를 불렀다. 절박한 처지의 부모가 보낸 문자메시지를 계속 삭제, 이미 살해된 소녀가 살아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하면서 선정적 기사를 쏟아낸 것이다. 범죄 피해자와 사회를 농락하고 수사를 방해한 극단적 황색 저널리즘이 '영국 사회의 봉기'를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사회 양극화 부추긴 행태 반성

그러나 가디언은 도청과 황색 저널리즘은 훨씬 큰 악덕의 한갓 보조수단일뿐이라고 논평했다. 머독 언론은 정치인 등의 은밀한 사생활 정보와 기사를 이용,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머독은 역대 보수당 및 노동당 정부와 차례로 유착, 위성방송 규제완화 등을 얻어냈다. 또 경찰조직에 뇌물을 뿌려 평소 고급정보를 얻는 동시에 도청 정보를 해킹 수사를 막는 데 이용한 정황이 뚜렷하다.

주목할 것은 스캔들을 파헤친 가디언의 논객들이 머독 언론의 행태와 해악이 언론 전반에 뿌리 내린 현실을 스스로 반성할 것을 촉구한 사실이다. 독일 언론도 "우리 안에도 머독은 있다"고 썼다. 다양한 이념과 이해와 견해를 공정하고 균형 있게 대변해야 할 본분을 되새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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