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브라더스에서 일할 당시 중국인 작가 장량이라는 분이 대표적인 작가였다. 이 분과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 대해 여러 가지 상의를 하고 검토하면서 한 열흘 동안 골간을 만들기 위해서 시안을 보냈다. 한 20일 지나서 시나리오를 받아보았는데 너무 단조로웠다. 다시 한번 내 뜻을 전하고 '좀 제대로 다시 한번 해 주면 좋겠다'고 요구했고 약 20일 후에 다시 시나리오를 써 왔는데도 여전히 불만족스러웠다.
그래서 그것으로 장량은 손을 떼게 하고 내가 처음 의도했던 독창성을 살리며 직접 시나리오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오늘날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 된 것이다. 중국작가는 너무 보편적이고 자신들이 해 왔던 그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뭔가 새롭게, 알려지지 않았던 그런 얘기를 좀 가져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서로 뜻이 안 맞으니 내 나름대로 생각했던 독창적인 방향성을 살리기 위해 다시 시나리오를 써서 촬영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을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였다. 주인공이라는 것이 흔히 보통 영화에서는 매력 있는 사나이, 이런 배우를 썼는데 나는 그것보다는 평범한 얼굴로 관객에게 친근감이 갈 수 있는, 그리고 관객이 영화를 보면서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된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이 필요로 했다. 그렇게 로례를 캐스팅 하게 된 것이고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해서 강렬한 눈빛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보면 모든 눈이 상당히 강렬하게 나온다.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인물들이므로 무엇보다 눈이 강렬해야 했다. 눈이 흐리멍덩하면 영화는 진실성이 없어지고 거짓이 된다.
특히 중국영화는 와이어 액션을 많이 쓰는데 와이어는 속도감이 떨어지므로 트램폴린을 써서 속도감을 더했다. 속도감과 박진감이 더욱 잘 표현되게 하기 위해 마룻바닥에 파우더를 뿌려서 어느 인물이 공중에서 마룻바닥에 떨어지면 먼지가 일어나게 효과를 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석훈의 눈을 빼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독수리가 사냥감을 덮칠 때 발톱으로 잡아채는 모습을 남석훈의 눈을 뽑는 장면에 응용한 것이다. 또 화면에 속도감과 박진감을 강조하기 위해서 카메라 렌즈를 향해서 덮쳐 들어오고, 주먹이 날라 들어오게 했으며 이를 더욱 강조하고자 할 때는 와이드 렌즈를 사용해서 상대가 창을 던지면 그것이 카메라 렌즈를 향해서 날아 들어오는 것의 속도감과 박진감을 한층 강조했다. 이것을 스트라이크(Strike) 기법이라고 나는 불렀다. 손가락 끝에 기를 모을 때 손가락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마치 쇠를 달군 것처럼 강력해지는 것이다. 특수효과가 없던 당시 이 장면은 붉은 조명으로 처리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주인공이 오카다라는 일본 적수를 무찌르고 땅을 내려다 보고 있는 클로즈업이 등장한다. 그것은 원치 않는 살인을 저지른 후 주인공의 두려움과 고민과 회한에 가득 찬 얼굴을 강조한 것인데, 나는 비록 액션영화를 만들기야 하지만 살인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더군다나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사람을 해치기를 원했다기 보다는 매번 그런 상황으로 몰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기가 살기 위한 방어를 하는 역할이었다. 어떠한 원인에 의해서건 간에 폭력을 사용한 것이 가해자와 피해자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느냐 이런 것을 마지막 클로즈업에 담은 것이다. 말하자면 주인공 로례의 클로즈업이 나의 메시지가 담긴 커트가 된 것이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처음에 미국 콜럼비아와 워너브러더스가 배급권을 놓고 경합을 했다. 결과는 워너브러더스의 위해 미국 전역에 개봉을 하면서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홍콩영화가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것에 대해 나는 상당히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영국에서는 '킹 복서'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다는데 처음에 내가 붙인 이름은 '철장'이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서 가장 모티브가 되는 것이 '철장'인데 란란쇼가 홍콩개봉을 하면서 '천하제일권'으로 해서 나와 실랑이를 좀 했다. 내가 "왜 '천하제일권'이냐?"하니 "중국 사람들은 그런 타이틀을 좋아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결국 홍콩에서는 '천하제일권'으로, 영어로는 '킹 복서'로 번역되어 영국을 포함한 유럽으로 넘어간 것이었고 미국에서는 내 의도대로 '죽음의 다섯 손가락'로 타이틀을 붙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완성된 작품을 수입하려면 한 편당 3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줘야 하기 때문에 신상옥 감독이 변칙적으로 이 영화를 들여갔다. 이 영화를 합작영화처럼 변형시킨 것이다. 당시 합작 기준에는 배우 세 사람 이상을 쓰면 합작영화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한국 국적인 내가 감독을 했으니 신상옥 감독이 위장합작으로 만들어서 들여갈 수 있었다. 검열이 엄격한 군사정권하에서 무사통과를 위해 재편집을 해버렸고 원래 내 작품과는 다르게 변형시켰다. 결국 제목도 '철인'이라고 변경하게 됐다. 당시에는 나도 신 감독이 위장 합작영화로 들여갔는지 몰랐다. 나중에 후배들이 전화를 해서 알게 되었고 굉장히 화가 난 나는 신 감독한테 전화해서 "'철인'이 뭐냐? 왜 타이틀을 바꾸느냐?"하며 옥신각신했지만 이미 영화는 개봉한 뒤였다. 그런 식으로 마구잡이 편집을 하고 제목 변경까지 했으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한국에선 기대만큼 관객이 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에서는 '포세이돈 어드벤처' '사운드 오브 뮤직' 등과 동시 개봉되었지만 흥행에서 앞서가게 됨으로써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런데도 당시 한국 평단이나 영화담당 기자들이 영화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이 기사를 썼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서 리샤오룽(李小龍)이 주연을 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주요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나가면서 감독 이름도 없이 '홍콩영화가 세계 시장에서 '포세이돈 어드벤처'나 '사운드 오브 뮤직'등의 미국 대작을 전부 누르고 박스오피스 1위를 했는데 한국은 뭘 했느냐?' 이렇게 기사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나 타임에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내용이 기사화되니 한국의 독자들이 신문사에 항의를 한다. '감독은 한국 사람인데 어떻게 감독 이름을 빼고 중국 얘기만 했느냐?' 그런 뒤에야 뒤늦게 아주 조그맣게 '조사를 해 보니 정창화 감독 작품이었다'고 기사화했던 적도 있다.
미국에서는 '총 없이 싸운 서부극이었다'는 평도 있었다. 평단이나 문화부 기자들이 '참 자랑스럽다'는 정도는 기사화 해줬어야 했는데 왜 그리 옹색하게 폄하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요새 영화감독들은 참으로 행운아라는 생각이다. 평단이나 영화 기자들이 아낌없는 뒷받침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평단이나 영화 기자들은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했고 그 시대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폐단도 있었던 것이다.
세계 최대의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인 IMDB는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미국 쿵푸 영화 열기에 불을 지핀 작품'으로 평가했다. 영화 '킬빌'로 이 영화를 존경심을 표시했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내 인생의 영화 베스트 10'에 꼽기도 했던 이 영화는 2005년 칸국제영화제 칸 클래식 부문에 선정 초청됨으로써 명실공히 고전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내 작품을 통해 악당에서 영웅으로 거듭 태어났던 로례에 대한 소식은 2004년도에 파리에서 내 회고전을 할 때 찾아온 그의 부인을 통해서 전해 들었다. 로례는 2002년11월2일 중국 어느 빈민굴에서 홀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향년 6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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