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는 조쉬 하트넷이었다. 대표작 '진주만'(2001)이 개봉한 지 8년이나 됐고 이렇다 할 후속작이 없었지만 할리우드라는 후광은 강했다. '나는 비와 함께 간다'에 함께 출연한 일본 배우 기무라 다쿠야, 이병헌과의 어깨동무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그래도 아마 그 해 부산 최고의 손님은 틸다 스윈튼이었을 것이다. '마이클 클레이튼'(2007)으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까지 지낸 이 유명 배우는 국내 언론으로부터 큰 환대를 못 받았다. 언론의 취재활동이 시들해지는 영화제 후반에 부산을 찾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가 스타이기보다 배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기자들의 입에서 나온 말을 당시 유행어로 표현하면 "누구~?"였다. 영화제 측은 기자회견 동안 공들여 모신 세계적 영화인을 향해 질문이 안 나오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해야만 했다.
2008년 부산영화제의 최고 스타는 일본 배우 우에노 주리였다.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로 한국에 두터운 팬 층을 형성한 그가 부산에서 보인 행동 하나하나가 화제였다. 하지만 영화제 폐막 한 달 뒤쯤 만난 일본의 거장 오구리 고헤이 감독은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되물었다. "누구~?" 역시 인기나 지명도는 지역과 연령 등에 따라 천차만별인가 보다.
여러 영화제들은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해외 손님들을 초빙하려 한다. 영화제의 격을 올리고, 영화제를 알리기엔 저명 영화인 방문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국내 영화제들 사이에서 가장 모시고 싶은 진객으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꼽혀왔다. '이웃집 토토로'(1988)를 필두로 한 그의 애니메이션 불법 비디오테이프 관람은 1990년대 중반 대학생들의 필수 코스였다. 극장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등에도 관객이 몰렸다.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에도 불구하고 정작 미야자키 감독은 한국을 공식 방문한 적이 없다. 아마 한국인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도 한국 땅을 밟지 않은 일본인은 그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정도 아닐까.
국내 한 영화제가 올해 미야자키 감독의 방문을 적극 추진하다 결국 무산됐다. 미야자키 감독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생 시절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청소년판에 만화를 기고하기도 했던 그의 오랜 이데올로기가 발목을 잡았을까(그는 애니메이션 일을 시작하며 "미 제국주의 디즈니에 대항하고 싶어서"라고도 말했다). 억측과도 같은 추측을 해보니 방한 사절 이유가 더욱 궁금해진다. 더 늦기 전에 그의 얼굴을 한국에서 볼 수 있기를. 물론 무라카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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