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A씨는 자신 소유의 고급 오피스텔을 임대해 살고 있던 김모(61)씨로부터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김씨가 "나는 청와대 소속의 비공식 국가기관 조직원인데, 우리 기관에는 군 장성 출신인 대장 1명과 장군 1명, 내 밑으로 보좌관이 5, 6명이 있다"고 슬쩍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
김씨는 다음달 A씨 부부를 집으로 초대해 청와대 문양이 찍힌 보자기와 넥타이핀을 보여준 뒤 미화 100달러짜리 뭉치와 금괴 등이 찍힌 비디오를 틀어줬다. "일제시대 위정자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비자금이 땅에 묻혀 있는데, 우리 조직은 이를 국세청에 신고해 정상적으로 사용할 돈으로 바꾼다. 비용을 대면 15% 가량을 배당으로 받게 된다"는 그럴듯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후 김씨는 A씨에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땅에 묻혀 있던 골동품과 다이아몬드, 금괴를 유통하는 데 필요하다" "비자금을 옮기는데 컨테이너가 필요하다" 등 온갖 명목을 갖다 붙였다. 이렇게 해서 1년간 챙긴 돈이 8억3,000여만원이나 됐다.
김씨는 A씨를 속이기 위해 수준급의 연기를 선보였다. 50억원 상당의 위조 수표 뭉치와 5,000억원이 기재된 위조 통장을 보여주거나, 교외 고급 별장을 자주 데리고 다니며 안가(작업장)라고 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게 거짓임을 눈치를 챈 A씨가 김씨를 고소해 사기 행각은 끝이 났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부장 김용섭)는 사기와 위조유가증권행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돈을 편취하고 피해자를 기망한 죄질이 불량하다"며 원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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