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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고졸] (1) 전문계고 졸업생들은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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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고졸] (1) 전문계고 졸업생들은 뭐하나

입력
2011.07.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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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12시간 근무 힘들어 차라리 알바"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도 먹고 살만한 시절이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전 고졸들은 대졸자 못지 않게 잘 나갔다. 명문 실업계 고교 졸업생들은 대기업을 골라서 입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취업난이 심화되고 대학진학률이 80%에 달하는 현실에서 고졸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한국일보가 전문계인 경기 K고와 서울 M여고 3학년 한 학급 학생들의 올해 2월 졸업 후 삶을 추적한 결과, 대한민국에서 '고졸'로 살아남기는 힘들어 보였다. 상당수가 중소기업에 취업했다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대졸자와의 차별에 불만을 느끼고 '간판'을 따기 위해 다시 대학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고달프다

K고 3학년4반 졸업생들은 고졸 학력만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직장을 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특성화, 전문계고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3년 동안 배운 전공과 상관 없는 '묻지마 취업'에 학생들은 힘겨워했다. 불안한 마음에 일단 취업부터 서둘렀지만 열악한 근무 조건과 턱없이 낮은 임금에 좌절해야만 했다.

대기업 생산직에 취업한 K(19ㆍ여)씨는 석 달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컴퓨터그래픽 디자이너를 꿈꾸고 전문계고에 진학했지만 학교에서 권하는 일자리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불문하고 생산직이었다. 그는 백수가 되지 않으려고 취업을 했지만 하루하루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현재 중소제약업체의 사무직으로 이직했다. 그는 월급이 좀 모이면 고교 시절 전공을 살려 야간 전문대학이라도 다녀볼 생각이다.

중소 자동차정비업체에 취직했다가 반년 만에 퇴사한 K(19)씨는 현재 PC방, 놀이공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고 있다. 그는 "어차피 돈 버는 게 목적이라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을 받으며 하루 평균 12시간씩 일주일 꼬박 일해 녹초가 되느니 부담 없는 아르바이트가 훨씬 속 편하다"며 "좀 더 나은 곳에 취업하기 위해 기술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전자업체에서 일하는 K(19)씨도 "내년에 군대를 다녀온 후 대학에 반드시 진학할 것"이라며 "생산직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대학 졸업장뿐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넘을 수 없는 차별의 벽

M여고 3학년 1반 학생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주로 사무직 일자리를 잡았고 급여는 대졸자에 못 미치지만 대기업에 취업한 경우도 여럿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졸자와 함께 일하다 보니 제도화된 차별에 더 큰 서러움을 느낀다고 호소했다.

대기업 S사 사무직원이 된 K(19)씨는 같은 회사의 고졸 출신 선배들로부터 "대학에 무조건 가야 한다"는 조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김씨가 다니는 회사는 고졸, 전문대졸, 4년제 대졸 사원의 직급이 단계별로 나눠져 있어, 고졸은 승진을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다. 취업 10년차 고졸 선배는 "단순한 사무보조 업무를 반복하는 것 말고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K씨에게 진학을 권유했다.

K씨는 "대학 공부가 필요 없다고 판단해 취업을 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학력 차별의 벽을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며 불안해했다. 중소업체에 취업한 L(19)씨는 "지금 연봉이 1,600만원밖에 안 되는데 대졸자의 경우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월급을 모으는 대로 대학에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학 간판이라도 따자"

능력보다는 학력으로 차별 받는 현실에서 대학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 K고를 졸업하고 한 전문대에 진학한 G(19)씨는 "제대로 된 곳에 취업하길 원한다면 대학에 진학해 몇 년 후를 준비하는 게 현명할지 모른다"며 "지금 당장 돈을 벌지 못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로지 '대졸자'가 되기 위해 진학을 강행한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끼거나 적응하지 못해 자퇴하는 경우도 있다. 한 전문대 컴퓨터학과에 진학했다가 자퇴한 K고 졸업생 P(19)씨가 그런 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취업을 반드시 보장받지도 못하는 현실에서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고 고개를 떨궜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이정현기자 johnlee@hk.co.kr

■ 외환위기 전후 전문계고 졸업생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전문계고를 졸업한 선배들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취직은 잘 됐지만 그 뒤엔 남모를 고충이 있었다.

15년 전인 1996년 전문계고인 서울 M여고를 졸업한 김남희(34ㆍ가명)씨는 졸업 3개월 전인 95년 11월 K섬유무역회사에 입사했다. 취직은 어렵지 않았다. 외환위기 전이라 졸업생 100%가 취업이 되고 셋 중 하나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들어가던 시절이었다. 인사팀에서 사원복리 업무를 맡은 김씨의 초봉은 1,000만원 남짓. 대졸자보다 액수는 적었지만 어린 나이에 입사한 데다, 고졸 연봉 치곤 높은 수준이라 큰 불만이 없었다. 고졸자는 9급, 전문대 졸업자는 7급, 대졸자는 5급부터 시작하는 직급체계가 있었지만 김씨는 나이가 들고 경력도 쌓이면 대졸자가 하는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5년 내내 임금 상승 없이 9급으로 지내면서 보이지 않던 차별이 눈에 들어왔다. "4년차 때 부서회의에서 대졸 신입사원에게도 주어지는 발언권이 제겐 없었어요. 경력면에서 제가 더 뛰어난데 회의장에서 전 투명인간이었죠." 김씨를 더 좌절시킨 건 고졸사원에게만 입혔던 유니폼이었다. "대놓고 고졸과 대졸 간에 벽을 만든 거죠. 서비스직도 아닌데 왜 유니폼을 입혔는지…." 박탈감을 느낀 그는 2005년,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김씨의 동기인 강민경(34ㆍ가명)씨는 대기업 계열 카드사에 입사해 회계 예산업무를 맡았었다. 고교 때 전공한 전산이 업무에 도움이 됐다. 그는 "당시에는 고졸 여직원들이 많아서 승진이나 임금 차별 같은 걸 느끼지 않았다. 고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덜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나 강씨도 결국 야간대학을 다녔다. 강씨는 "우리사회에서 '간판'이 중요했고, 사회적으로 대졸자가 대접을 받는 그런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었다" 고 말했다.

2000년 2월 M여고를 졸업한 최은경(31ㆍ가명)씨도 출발은 순조로웠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취업시장이 어려워졌다지만 그는 고3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S농자재회사에 취직했다. 문제는 임금 격차였다. 3년차이던 최씨가 연봉 1,300만원을 받을 때 갓 입사한 대졸자가 1,600만원을 받는 것을 알았다. '3년 경력'이 '4년 공부'보다 못했던 것이다. 최씨는 대졸자가 공부를 많이 해서 인정받는다고 생각해서 2004년 야간으로 전문대 관광경영학과를 다녔고 이후 직장 2곳을 옮겨 다니다 현재는 육아휴직 중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중요한 건 자신감인데, 우리사회는 대학 간판 없이 자신감을 찾기는 힘든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정승임 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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