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1달러 = 1,000원' 선도 무너지는 게 아닐까.
원화가치 상승(원ㆍ달러 환율 하락)이 거침 없다. 하루 건너 한 번씩 연저점을 갈아치우는 행보를 이어가면서 8일에는 근 3년 만에 최저치까지 뚫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온통 환율 하락 요인 뿐이다. 당장이야 1,000원 위쪽에서 공방이 이어지겠지만, 내년에는 네 자릿수 환율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제는 저환율 시대
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7월 1,204.94원이던 월평균 원ㆍ달러 환율이 지난 달 1,080.87원으로 떨어졌다. 1년 새 달러당 120원 이상 낮아진 것. 특히 이 달 들어 환율 하락세가 더 가파르다. 7일에는 2년11개월 만에 최저치인 1,057원을 기록하며 9영업일간 낙폭이 30원에 육박했다.
환율 하락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15개월째 이어지는 경상수지 흑자 행진 영향이 크다. 올 들어 5월까지 흑자 규모는 60억달러를 훨씬 넘는다. 한 동안 주춤했던 국내 증시의 외국인 행렬도 재시동이 걸린 상황이다. 코스피지수 2,200선이 다시 눈 앞에 다가오면서 외국인들의 순매수가 8일째 이어지고 있다. 달러 유입 증가로 원화 환전 수요가 늘어나면서 원화 강세(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글로벌 달러 약세 역시 거스르기 힘든 대세다. 유럽 재정위기가 일시적인 달러 강세 요인으로 작용하긴 했지만, 그리스 사태가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아가면서 달러 약세에 다시 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위기 상황만 아니라면 큰 흐름에서의 달러 약세 기조는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중국 위안화 강세, 미 재정적자 문제 등이 달러 약세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에 달렸다
원ㆍ달러 환율에 중대 변수 중 하나는 외환당국이다. 현 정부 초기의 고환율 정책은 아니더라도 그 이후까지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 외환당국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방어해왔다. 수출 경쟁력을 높여 성장률을 제고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달 말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방향에서 성장보다 물가에 방점을 찍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줄줄이 앞둔 상황에서 "더 이상 고물가를 방치할 수 없다"는 정부 내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얘기다. 특히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 호황세가 이어지는 등 환율과 수출간 상관관계는 점차 약화하는 추세여서, 정부가 더 이상 환율 방어에 집착할 근거도 부족해 보인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정부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환율 하락을 적극 용인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가적인 환율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인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어디까지 용인할 지가 변수이긴 하지만, 길게 보면 2008년 4월 이후 유지돼 온 1,000원 벽 붕괴도 예상된다는 전망이 많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추세적으로 원화 강세 요인이 상당 기간 지속되면서 내년에는 세 자릿수 환율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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