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상주 상무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17라운드 경기에서는 프로축구 사상 초유의 진기한 광경이 연출됐다. 수비수 이윤의(24)가 골키퍼 장갑을 끼고 상주 골문을 지킨 것. 필드 플레이어가 수문장으로 선발 출전한 것은 1983년 프로축구 출범 이래 처음이다.
상주가 보유한 골키퍼는 총 4명. 이 가운데 3명이 승부 조작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소환됐고 주전 수문장 권순태는 경고 누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상주 코칭스태프는 궁여지책으로 그나마'골키퍼 자질'이 뛰어나다고 판단된 이윤의를 문전에 세웠다.
이윤의의 정규리그 데뷔전이었다. 광운대를 졸업하고 지난해 강원에 입단, 같은 해 11월 상무에 입대한 이윤의는 지난 4월 부산과의 컵대회에 교체로 한 번 출전했을 뿐이다. 경험 부족에다 2만 8,000여 관중이 운집한 원정 경기에서 그것도 쟁쟁한 공격수가 즐비한 서울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 오금이 저릴 만한 악조건이다.
그러나 이윤의는 예상 외로 잘 버텨냈다.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며 전반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행운도 따랐다. 이윤의가 반응하지 못한 몰리나의 터닝 슛은 골대 밖으로 흘렀고, 방승환의 헤딩 슛은 고차원이 문전에서 막아냈다. 상주는 전반 33분 김정우의 페널티킥으로 1-0으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임시 변통'의 한계는 후반전에 드러났다. 이윤의는 후반 2분 잡았던 볼을 그라운드에 내려 놓은 후 다시 잡는 실수를 저질렀다. 코 앞에서 간접 프리킥을 내준 위기는 동료들의 육탄 수비로 넘겼다. 그러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후반 8분 골지역 왼쪽으로 볼이 투입되자 각을 좁히기 위해 달려나갔지만 데얀은 여유 있게 이윤의를 제치고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후반 20분 데얀의 땅볼 슈팅은 다이빙한 이윤의의 몸 아래를 통과해 골 네트를 흔들었다.
상주는 후반 39분 김민수의 프리킥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이윤의로서는 '기적'에 다름없는 결과. 그러나 마지막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후반 인저리타임때 방승환의 헤딩 슛이 골 네트를 갈랐다. 이윤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윤의는 경기 후"학생 때도 골키퍼를 해본 적이 없지만 3일 훈련하고 경기에 나섰다. 팀을 위해 뛸 수 있어 영광이다. 두 번째 골을 막았다면 이길 수도 있었을 텐데 몹시 아쉽다"고 '이색 경험'의 소감을 밝혔다.
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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