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형님, 꺼진 불도 다시 봐야겠습디다' 그러더라고. 꺼진 줄 알았는데 아직 타더라면서."(윤형주)
"옛날에는 꿈도 못 꾸던 일이지. 늙은 가수들 붐이 일어난다는 게. 사회적으로도 기현상이야."(송창식)
"근래 공연장에서 들을 수 없는,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받고 다녔어요. 우리한테도 감동이 밀려오지."(이상벽)
"공연도 공연이지만, 오랜만에 선배들이랑 함께 하니 그게 참 좋았어요. 일주일 되면 또 보고 하는데도 기다려지고."(김세환)
지난해 9월 TV 출연 이후 달아오른 쎄시봉 열풍을 타고 전국투어에 나섰던 '젊은 오빠들'이 종착역에 닿았다. 환갑을 훌쩍 넘긴(형들보다 고작 한 살 어려 막내인 김세환이 예순 넷이다) 이들은 지난 2월부터 거의 매주 20개 도시를 돌며 파릇파릇한 아이돌 가수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수천 석 규모의 대형 콘서트장만 골랐는데도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그렇게 50회 가까이 공연하며 전국의 팬들을 만난 이들은 8~10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무대에서 화려한 외출을 마무리했다. 9일 공연장 대기실을 찾아 소감을 들었다.
"데뷔 이래로 제일 바빴지."(김). "언제 다 도나 했는데 끝났네. 표를 못 구하니까 서울서 지방 티켓까지 뒤져서 오더라고. 60대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는데, 나도 전율이 오더라고."(이) "처음엔 저 사람 눈에 뭐가 들어갔나 했는데, 울고 있는 거야. 내가 노래 부르면서 내가 감동한다니까(웃음)."(김)
한창 감동이 화제인데, 송창식이 불쑥 뱉는다. "난 그런 걸 봐도 한 십분 후에나 감동이 올까. 나는 직접 교감은 별로 없어. 다만 노래하면서 관객들 숨소리 같은 걸로 교감하지." "감이 늦구먼 늦어" 하는 김세환의 핀잔에도 그는 꿋꿋하게 대꾸한다. "다른 의미로 교감하는 거지." 나이 지긋한 청춘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노래로 인연을 맺은 지 40년, 이제는 눈빛만 봐도 척 하고 통하는 사이다. 그렇게 만났어도 할 말이 또 많다. 쎄시봉 공연은 그냥 한때 가요계를 주름잡던 옛 가수들의 공연만은 아니다. 우정이 있고 그들의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감동이 배가 된다.
이들은 서울 무교동 한 귀퉁이 음악감상실 쎄시봉을 통해 만났다. 1966년 가을 ROTC 군복을 입고 쎄시봉에서 사회를 본 이상벽은 이듬해 송창식 윤형주의 쎄시봉 데뷔를 지켜봤고, 가장 늦게 합류한 김세환은 막내로 예쁨 받으며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 등에게서 곡을 받아 74,75년 방송사 최고 가수상을 휩쓸었다.
고작 아홉 달 위인 윤형주가 "다듬어지지 않고 서툴고 투정 많고 어리숙한 세환이를 데리고 41년 전…"이라고 놀려대도 정겹게만 들린다. 사석에서 코미디언 못지 않게 좌중을 웃기는 김세환에게 무대서도 말할 기회를 주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말 적게 하는 게 콘셉트야. 막내 설정이라 '구여워'보이는 거지. 송창식은 신비주의고, 윤형주는 코디네이터 역할, 나는 분위기를 업 시키는 거고."(이) 윤형주도 거든다. "세환이는 공식석상에선 떨려서 얘기 못해. 방송사에서 MC 시켰는데 끝내 못했잖아. 잘린 게 두세 번 되지. 웃기긴 한데 진행은 안 된다고. 다 자기 재주지 뭐."
송창식이 언젠가 점을 봤는데 윤형주, 김세환 하고 셋이 '삼합' 운명이라고 했단다. 거기에 입심 좋은 이상벽이 가세해 콘서트는 한 편의 드라마가 됐다. "우리 이야기를 가지고 공연할 수 있는 게 너무 좋다"는 그들이다. 송창식 윤형주는 단 1년 10개월 활동한 트윈폴리오로 '웨딩케익' '하얀 손수건' 같은 히트곡을 남겼다. 이번 콘서트에는 그들과 '트리오세시봉'이 될 뻔 했다가 갑작스런 입대로 꿈을 접은 이익균씨도 함께 했다.
전국투어를 마친 심경은 아쉬움과 고마움, 감격이 교차하는 듯 했다. "같은 시대에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 받고 코끝이 찡했지."(윤) "우리 노래를 좋아하는 세대가 다시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 더 좋아."(송) "손주 같은 애들도 '쎄시봉 아저씨 사진 찍어요' 하고 달려와요. 옛날엔 상상도 못했지. 걔네한텐 할아버진데."(김)
송창식을 제외한 이들은 잠시 휴식 후 미국 공연을 떠난다. 22일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공연 예술센터, 23,24일 로스앤젤레스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콘서트를 연다. 동부와 중부 지역 콘서트도 추진 중이다. 송창식은 16년째 매일 해온 제자리 빙빙 돌기 '1만일 운동'을 하루 빼먹어야 한다는 말에 참가를 포기했다. 대신 조영남이 그 자리를 채운다.
쎄시봉의 공연을 본 중년 관객들은 "옛 추억이 떠올랐다" "변치 않는 노래에 감동했다"며 박수를 보냈고, 그들을 몰랐던 세대도 서정적인 윤형주 김세환의 목소리와 가슴 밑바닥까지 가 닿는 송창식의 노래에 이끌려 공연장을 찾았다.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쎄시봉은 당분간 휴식 모드에 들어간다. 송창식은 "당분간이 아니라 이제 휴직이야"라고 했지만, 다들 마음은 다음 무대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은 콘서트 계획이 없지만 찾아주는 이가 있다면 찬 바람이 불 때쯤 다시 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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