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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한미 FTA와 미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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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한미 FTA와 미국 정치

입력
2011.07.1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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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의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답답하고 안타깝다. 한미 FTA 재협상이 끝난 지도 반년이 훨씬 지났고 콜롬비아, 파나마와의 FTA 쟁점이 마무리된 것도 수개월 전인데 아직도 정략적 이익에 얽매어 질척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공방 지켜볼 만큼 여유 없어

어느 나라건 의사결정 과정에서 형식과 절차는 있기 마련이지만, FTA라는 국가적 대사(大事)를 이렇게 오랫동안 정치적 흥정으로 삼는 것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더욱이 지금 미국의 경제사정은 정치적 공방을 즐길 만큼 한가하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실업률은 9~10%에서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새로 생긴 일자리는 9개월래 최저를 기록해 경기회복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을 무색하게 했다. 돈이 없어 주정부가 폐쇄되고, 일선 학교는 재정난을 이유로 수업일수를 줄이는 상황이다. 실직자와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단체들은 도움을 원하는 사람은 늘어나는데,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줄어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마디로 일자리를 만들어 국민이 먹고 살게 만드는데 여야가 밤을 새도 어려운 판국이다.

백악관과 공화당이 FTA 비준을 볼모로 으르렁대는 무역조정지원(TAA)은 FTA로 인해 실직한 노동자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FTA를 하기 전 꼭 필요하고,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사안이다. 그러나 지금 미 여야가 싸우는 것은 'TAA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TAA 연장을 FTA 비준과 연계할 것인가' 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TAA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 처리방식에 대한 이견 때문에 FTA까지 무산시킬 수 있다고 위협하는 백악관과 공화당의 행태를 이해하는 미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공화당이 지지한다는 보장만 있으면 연계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게 백악관의 입장이고 보면 결국 본질은 여야 간 불신과 체면 다툼에 다름 아니다.

이 일이 있기 전 한미 FTA를 콜롬비아, 파나마와의 FTA와 일괄 처리할 것이냐를 놓고 벌인 싸움도 마찬가지다. 콜롬비아 정부의 노조탄압 때문에 일괄처리를 꺼리는 민주당이나 민주당의 반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한미 FTA에 연계하려는 공화당의 주장은 경제논리와는 거리가 먼, 정치적 지지세력에 영합하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공교롭게도 두 경우 다 한미 FTA가 여야의 정치싸움에 휘말려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게 속상할 따름이다.

이런 공방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는 것이 미국의 정치 시스템이다. 우리 식으로 좁혀 말하면 공천권이다. 미국은 한국처럼 당이 의원의 정치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공천이라는 게 없다. 유권자가 프라이머리(경선)라는 제도를 통해 의원의 후보자격을 결정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의원들은 당 지도부에 대해 보다 독립적이고, 그래서 소신있는 의정활동이 가능하다. 한국이 미국의 정치를 부러워할 때마다 거론되는 모범사례다.

소신있는 정치 아쉬워

그러나 이번 TAA 싸움은 미국의 '민주적인 선거공천'이 가장 부정적인 쪽으로 작용한 경우가 아닌가 한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한국과 달리 미국민은 무역, 특히 FTA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다. 우리끼리도 잘 할 수 있는데, 괜히 다른 나라 사람에게 일자리만 뺏길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민주, 공화 의원들의 힘겨루기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보장받기 위해 '공천권'을 갖고 있는 유권자의 정서를 다분히 의식한 결과다. 국익과 대의명분을 우선한다면, 마냥 유권자의 뒤만 좇을게 아니라 때로는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황유석 워싱턴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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