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한 보름앞… 美 해법 못찾으면 세계경제 치명상
미국은 지금 국가부채 증액 문제로 난리다.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나라 빚은 둘째 문제다. 당장 돌아오는 부채를 막기 위해 법으로 정한 국가부채 상한을 늘려야 할 정도로 미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미국의 법정 국가부채 한도는 14조2,940억달러다. 하지만 부채규모는 5월 말에 이미 이를 넘어섰다. 국민 한 사람이 평균 4만5,000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자만 연간 1조달러에 달한다.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다. 다만 연방준비제도(Fed)에 예치해 둔 현금 1,000억달러를 꺼내 쓰고, 채권 발행을 유예하는 등의 비상조치를 통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상태다.
그나마 이마저도 다음달 2일까지다. 그 기간이 지나면 국채를 갚지 못하는 국가부도 사태가 불가피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이달 22일을 합의 시한으로 제시하며 부채증액에 대한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8월 2일은 재무부가 부채증액 마감시한으로 제시한 물리적 시간인 만큼, 관련 법안을 심의하고 표결을 거쳐 대통령 서명을 받기까지의 소요기간을 감안하면 열흘 정도 앞당겨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남미나 일부 낙후한 유럽 국가에서 보았던 국가부도 사태가 세계 유일 강대국이자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에서 벌어지느냐가 앞으로 보름 내에 판가름 나는 것이다.
굴지의 신용평가회사를 비롯한 민간 경제단체들은 부채증액에 실패했을 경우 세계경제에 초래될 엄청난 후폭풍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3대 신용평가회사의 하나인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최근 증액에 실패할 경우 미 채권의 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현재의 AAA에서 선택적 디폴트인 D로 강등하겠다고 했고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세계 금융권은 증액시한 이틀 뒤인 8월 4일 만기가 돌아오는 미 단기국채 300억달러의 처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디폴트 사태가 현실화할 경우의 여파에 대해 아예 말을 아낀다. 피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미 국채와 달러가 폭락하고 금리는 폭등해, 그렇잖아도 회복세가 흔들리는 세계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추락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욱이 인플레를 우려한 중국이 올해 다섯 차례나 은행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등 긴축기조에 들어서있고 그리스, 포르투갈의 재정위기로 유로존의 금융시장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정부 지출이 중단돼 연금, 학자금 대출 등의 사회복지시스템이 마비되고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이자율이 올라가 주택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지난달 말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부채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지금의 정부 지출과 세수 등을 감안할 때 재정위기는 10년 이상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70% 수준인 국가부채가 2035년이면 GDP의 두 배인 190%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을 내놨다. 그나마 CBO가 분석한 GDP의 70% 수준이라는 국가부채는 주정부의 채무와 연방정부가 사회보장기금, 의료보험기금, 공무원기금 등 각종 기금에서 빌린 부채 등 국내에서 진 빚을 제외한 것이어서 이를 합칠 경우 실제는 GDP의 100%에 달할 것이란 추정이다.
미 정부의 재정이 이처럼 허약해진 것은 과거 공화당 정권의 유산이다. 로널드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 행정부 12년 동안 계속된 군사비 증액과 부유층 감세로 미국의 부채는 GDP 대비 60% 대로 치솟았다. 그 이전까지 미 정부의 부채는 35% 수준이었다. 그 다음 들어선 빌 클린턴 민주당 정권에서 경제 호황, 균형예산 정책이 맞물리면서 국가부채는 50% 이하로 떨어졌으나 다시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고 주로 부유층이 혜택받는 2조달러에 달하는 감세를 추진, 재정은 급속히 나빠졌다. 이 때문에 1998년에는 예산이 GDP 대비 1% 흑자였으나 부시 행정부 말기인 2008년에는 3.2% 적자로 반전됐다. 1인당 공공부채 역시 이 기간 중 1만3,000달러에서 1만9,000달러로 50% 가까이 올랐다. 부시 행정부 8년 동안 미 재정이 완전히 바닥난 것이다.
여기에 오바마 행정부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쏟아부은 것이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 민주 "세금 인상" 입장에 공화 "복지 감축" 평행선
"재정 적자를 줄이려면 기업 세금우대 폐지 등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 "세금 문제를 계속 들고 나오면 협상할 수 없다."
미국 국가부채 한도증액을 놓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이 맞서고 있는 데에는 결국 증세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자리잡고 있다.
행정부와 민주당은 국방예산 등 재정 지출을 줄이는 한편 부유층, 정유업체 등 대기업에 대한 감세조치를 철폐해 세수를 확충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공화당은 국가경제와 일자리창출의 주역인 기업에게 세금을 더 물릴 수는 없다고 버티고 있다. 대신 2012년 예산안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 정책인 노령층 및 저소득층 의료보장 등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줄이라고 요구했다. 미치 맥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정부가 흥청망청 돈을 쓴 게 잘못이지 세금을 적게 걷어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며 완강한 태도를 보여왔다.
의회에서 양당 간 타협이 난항을 거듭하자 보다못한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타협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달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통해 "독립기념일(7월4일) 휴가를 반납해서라도 의회가 협상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하게 발언한 데 이어 6일에는 트위터 대국민대화를 통해 "부채 상한 증액 문제를 원만히 타결하지 못하면 국가신용은 내려가고 이자율은 올라가 제2의 경기침체라는 새로운 소용돌이를 만날 것"이라며 연일 부채한도 증액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7일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의장, 민주당의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 등 의회 지도자들을 불러 타협점을 모색했고, 이날 결론이 나지 않자 다시 일요일인 10일 회의를 갖기로 했다.
연방정부 부채는 법정한도(14조2,940억 달러)를 이미 넘어서 8월 2일까지 16조7,000억 달러로 상향하지 않으면 디폴트를 맞게 된다. 부채한도 증액안은 지난달 31일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 하원에서 이미 한차례 부결된 적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법안처리기간을 감안해 22일까지 의회 타협안이 도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성기 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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