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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철수사용설명서' 상품 매뉴얼처럼 구성한 백수 청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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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철수사용설명서' 상품 매뉴얼처럼 구성한 백수 청춘의 삶

입력
2011.07.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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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사용설명서/전석순 지음/민음사 발행ㆍ228쪽ㆍ1만1,000원

'Q. 철수가 혹시 성욕이 없는 건 아니죠? 어떻게 만난 지 100일이 지났는데도 손 한번 안 잡을 수 있죠? 이거 반품 사유 되죠?' 'A. 고객님들께서 진도가 느리다고 문의를 하시는데, 사용설명서를 좀 더 상세히 읽어주세요. (중략)성욕이 없는 것은 아니니 염려하지 않아셔도 좋습니다.'

전자제품 고객센터의 질의 응답을 빗댄 한 대목처럼 는 전체가 하나의 전자제품 매뉴얼처럼 구성된 소설이다. 도마에 올려진 상품은 '철수'라는 스물아홉살의 '루저'. 키 재산 학력 등 변변히 내세울 것 하나 없고 취업도 못하고, 여자 앞에선 소심해져 손 한번 시원하게 잡지 못하는 백수다. 작가는 2008년 등단한 스물아홉살의 전석순씨. 결함투성이의 불량품으로 취급되기 십상인 제 또래 세대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특이점은 '불량품'이란 이 평범한 비유를 한 권의 소설로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시치미 뚝 뗀 어조로 철수를 냉장고, 텔레비전, 다리미, 세탁기 등의 전자제품에 빗대며 성능 미달과 오류투성이의 삶을 풀어간다. 이를테면 '엄마는 어떻게든 철수가 쓸모 있는 제품이 되길 바랐지만 제품의 기능을 끝내 찾지 못했다'는 식의 서술. 소설엔 그래서 기능, 하자, 폐기처분, 고장, 업그레이드, 애프터서비스, 사용법 등 제품 사용 용어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각 장도 취업모드, 학습모드, 연애모드, 가족모드 식으로 구성돼 철수의 각 측면을 그린다. 자신을 불량품으로 여겼던 철수는 스스로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쓰기 시작하면서 차츰 타인들이 불량 사용자가 아닐까 여기며 자신의 존재를 찾아간다.

요컨대 소설은 인간관계를 효율과 기능의 상품관계처럼 취급하는 현대 사회에 대한 풍자적 알레고리다. 책은 제35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다. "설명서적 잣대로 인간을 취급하는 현실에 대해 설명서적 형식으로 대응함으로써 그 소외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라는 평을 받았다.

소설을 상품 매뉴얼처럼 구성한 방식이 경쾌한 아이디어이긴 한데, 아쉽지만 이 아이디어만으로 한 권의 장편 소설을 구축하는 게 힘에 부쳐 보인다. 시종 하는 제품설명서적 기술은 갈수록 신선도가 떨어진다. 차라리 단편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한 편의 재치 있는 시였다면 어땠을까.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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