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가해 학생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슬펐어요."
동기 여학생을 성추행한 고려대 의대생 3명의 출교를 요구하는 1인 시위가 꼭 한 달을 맞은 8일. 시위 장소인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문 앞에는 특별한 릴레이 시위 주자가 섰다. 그 동안은 회사원 대학생 등 이 성추행 사건에 분개한 다양한 이들이 매일 피켓을 들었지만 이날 나온 강한새(20)씨는 분노뿐 아니라 절박함으로 광주에서 상경했다.
강씨는 17살 때부터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점막과 침샘이 마르고 근육도 제대로 쓸 수 없는 희귀난치병인 쇼그랜증후군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 해 택시를 탔다가 택시기사에게 끌려가 성추행을 당했다. 하지만 병으로 시력을 거의 잃어 택시 기사 얼굴을 보지 못했고 증거도 없어 신고조차 못했다.
이런 아픔을 가진 강씨가 제 집처럼 드나드는 병원에 성추행범 의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공포 그 자체다. 강씨는 "여성 장애인은 의사의 성폭력에 노출될 위험이 훨씬 크다"며 "이번 사건의 가해 학생들은 반드시 출교 조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고려대는 성추행 사건 발생(5월21일) 후 한 달 반이 지나도록 가해 학생들에 대한 징계처분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학생들에 대한 징계는 이 학교 양성평등센터의 사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대 상벌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서성옥 의대 학장은 "의대에서도 상벌위원회를 세 차례 열었지만 징계 범위나 사유는 양성평등센터에서 정하기 때문에 양성평등센터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가해 학생 3명은 지난달 16일 성추행 혐의(성폭력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상 특수강제추행)로 구속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문제는 이들이 법정에서 어떤 형사처벌을 받든, 학교에서 출교 처분을 내리지 않으면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것. 가해 학생 3명은 자신의 성추행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지난달 3일 의대 4학년 시험을 치렀고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해 의사면허를 따면 인턴, 레지던트를 거쳐 전문의가 될 수 있다. 이는 성범죄 전력이 있는 이가 의사가 되는 데 대한 법적 제재 규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의료법 8조는 의사 면허의 결격사유로 정신질환자나 마약중독자 혹은 지역보건법 등 법률 위반으로 금고형 이상을 선고 받은 자는 의사가 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성 범죄자 등에 대한 규정은 전혀 없다.
지난달 8일부터 1인 시위를 기획해온 고려대 졸업생 김현익(32)씨도 이제 의료법 개정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김씨는 "1인 시위는 8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다음주부터 성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의료인 자격을 제한하도록 하는 의료법 8조 개정운동을 벌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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