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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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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백롱민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

입력
2011.07.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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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서 16년째 3000명에 안면기형수술 봉사

3,000배라고 있다. 최대 기원을 온몸에 담아 3,000번 절하는 종교 행위다. 실로 그 마음에 그득한 불심이 담기지 않으면 불가능한 고행이다. 고행이 바야흐로 막바지에 달하면 절하는 사람의 몸에서는 진득한 땀이 뚝뚝 작열한다. 죽을 힘을 다해 팔 다리 허리를 움직이지만 완전 슬로 비디오. 이건 뭐 올림픽 마라톤의 라스트 스퍼트가 따로 없다. 절 3,000번 하는 것이 이토록 고통인데 딴 나라에 의료봉사를 가서 수술을 한 사람 수가 3,000명이라면 이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수술이라는 행위는 절 못지않게 가혹한 육체노동이자 정신적 발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일을 16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니 머리가 얼얼할 정도의 충격이다. 바로 백롱민(53)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 얘기다. 그는 오는 10월에도 어김없이 베트남으로 의료봉사를 떠난다. 작년까지 거기서 집도한 선천성 구순열(입술이 갈라지는 병), 구개열(입천장이 갈라지는 병) 등 안면기형 환자가 2,907명인데 올해 다시 200여명을 추가하면 3,000명을 넘기게 된다.

_ 올해도 그 지독한 고행 또 하나. 계속 그 일을 하니까 사람들이 백 부원장의 단순우직함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같다고 놀린다.

"올해도 간다. 거기서 기다리는 환자의 95%가 어린이인데 그 애들 눈망울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_ 언제 떠나나.

"보통 6월 전후에 가는데 올해는 그 시기에 현지 측이 일정이 있다고 해서 좀 연기했다."

_ 기간은 예년과 마찬가지인가.

"그렇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기간이 7일이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10일이다."

_ 지금까지 수술한 환자 수가 엄청날 텐데.

"처음 시작한 1996년부터 작년까지 2,907명이다. 한 번 가면 200여명을 시술하기 때문에 올해 3,000명을 넘게 된다."

_ 한국에서 해외 의료봉사 최다 수술 기록이라고들 한다.

(미안한 표정을 얼굴에 가득 담으며) "그런 건 생각해 본 일도 없다.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_ 암만 머리를 굴려도 어떻게 이런 기록이 가능했는지 모르겠다.

"남보다 먼저 시작했고 오랜 기간 끊이지 않고 계속했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많은 환자를 수술할 수 있도록 장비와 인력을 대거 투입하고 효율적 시스템을 갖춘 것도 도움이 됐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런 식으로 대량 수술을 했다."

_ 이번이 몇 번째가 되나.

"매년 한 번씩 갔으니 열여섯 번째다."

_ 이번 의료봉사 지역은 어디인가.

"현지 파트너인 베트남 국방부 소속 의무사령부가 정하는데 아직 확정이 안 됐다. 남부 지역이라는 것만 대충 잡아 놨다."

_ 지금까지 베트남 몇 개 성에 들렀는가.

"하노이만 두 번 가고 매년 성이 바뀌어 지금까지 14개 성에 갔다."

_ 베트남 59개 성을 다 돌겠다고 했는데 '파파 할배'가 돼서도 계속해야겠다.

"그럴 생각이다. 또 내가 정 못 갈 형편이면 함께 활동하는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할 거다. 그들을 믿는다."

_ 대형 프로젝트라 가기 전 준비해야 할 것도 대단할 텐데.

"현지에서는 주로 구순ㆍ구개열 수술을 하는데 여기에는 장비가 많이 필요하다. 마취장비와 마취제부터 수술용 칼과 실 등 도구, 소독약, 수액제, 항생제 등 한도 끝도 없다. 현지에 야전병원을 차리는 셈이다. 이런 장비가 200명분이 넘으니 큰 컨테이너 하나를 거의 가득 채워 항공기로 보낼 수밖에 없다. 깨지기 쉬운 것은 컨테이너에 싣지 않고 직접 들고 간다."

_ 장비는 언제 보내나.

"가는 데는 하루밖에 안 걸리지만 세관 통과 절차가 있고 지방까지 트럭으로 날라야 하기 때문에 한 달 반 전에 발송한다."

_ 현지에 장비를 풀어놓는 것도 엄청난 고역이겠다.

"이거 푸는 게 진짜 대역사다. 30~40명의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가들이 컨테이너에서 장비를 꺼내 방 3개에 수술 테이블 6개(방마다 2개씩)를 세팅하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린다. 한국에선 다른 사람이 준비해 놓은 것을 수술만 해 봤지 직접 세팅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 갔을 땐 하루 종일 걸렸다. 진정한 고역이다."

_ 열악한 현지 사정 때문에 무진장 고생한다고 봉사단원들의 원성이 자자하던데.

"버스로 지방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냉방이 안 되는 버스도 많다. 2년 전에는 40도가 넘는 폭염 속에 6시간을 에어컨 없는 버스로 이동하느라 탈진했다. 에어컨 있는 것을 골라 타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다. 오는 대로 탄다. 모두 운이다. 길도 포장이 안 된 곳이 많다. 전기 사정 역시 안 좋아 수술방에 수술등이 희미한 경우가 다반사고 에어컨이 안 들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더위와 어둠 속에서 악전고투를 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심지어 전신마취를 할 수 없어 침으로 하는 병원도 있다. 그래서 항공기로 마취제를 보내는 것이다."

_ 처음엔 베트남에서 환자들이 안 모여 속 좀 끓였다고 들었다.

"안면기형 환자 대부분이 밖으로 안 나오고 집에 숨어 지내기 때문에 환자가 어느 정도 있겠다고 추정은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물론 환자들도 자신을 도와주려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이 부분이 아직도 문제다."

_ 효율성을 위해 수술이 공장에서 물건 만들 듯 이뤄진다는데.

"베트남 국군중앙병원 군의관과 현지 병원 의사들이 수술 전에 미리 환자를 조사한다. 어떤 질환이고, 혹시 수술에 지장을 주는 감기나 설사병 등은 없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도 실시한다. 환자 200여명은 한꺼번에 현지 병원에 입원시켜 대기하게 한다. 바로 수술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마땅한 숙박 시설도 없고 숙박료를 지불할 돈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게 준비 완료 상태에서 나와 우리 의료진이 현지 병원에 도착하면 바로 6개 수술 테이블을 돌며 시술한다. 수술 과정에서 6개 수술 테이블 중 2개 테이블엔 현지 군의관과 의사들이 참여하게 한다. 물고기를 주는 게 아니라 낚시질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현지에서도 자체적으로 수술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_ 수술 일정이 지나치게 빠듯한 것은 아닌가.

"오전 8시께 시작하면 오후 7시께까지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계속 뺑뺑이를 돈다. 오래 걸리면 밤 10시까지도 한다."

_ 현지 의사들은 수술법을 빨리 배우나.

"베트남 사람들이 원래 한국인하고 기질이 닮았다. 성실하고, 배움에 열정적이며, 머리 회전이 빠르다. 특히 군의관들은 몇 번 참여한 사람이 많아 실력이 좋다."

_ 다 쓴 장비를 놓아두고 오는 이유는.

"현지 의사들이 우리와 수술하면서 기술을 배워도 장비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그래서 매번 기증하고 온다. 낚시 방법을 알아도 낚싯대가 없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_ 베트남 의사들을 데려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연수시킨다는데.

"1998년부터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현지 성형외과 의사들을 선발해 연수 기회를 주고 있다. 지금까지 7명이 다녀갔는데 그 가운데 1회 연수생인 국군중앙병원 성형외과 의사 닥터 안은 나이도 동갑이어서 정말 친하게 지냈다."

_ 수술할 때 최대 포인트는.

"첫째는 안전이다. 많은 환자를 한꺼번에 수술하고, 생후 3개월짜리 등 어린 환자가 많으며, 전신마취 수술을 하는 점이 안전 위협 요소인데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다음은 최선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번에 수술을 받으면 이들에게는 다시 추가 수술의 기회가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수술할 때 이상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

_ 환자들이 1박 2일에 걸쳐 산 넘고 물 건너 오기도 한다는데.

"거리는 얼마 안 되지만 교통이 안 좋아서 접근성이 떨어진다. 말 그대로 차 타고 배 타고 걸어서 그렇게 이틀씩 고생해 가면서 오는 환자들이 많다."

_ 갈 때마다 베트남 국영방송인 VTV에서 방송한다고 한다.

"매번 찾아와 취재해서 방송을 내보낸다. 인터뷰도 하고."

_ 같이 가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바뀌나.

"달라진다. 물론 항상 참여하는 '골수분자' 5, 6명이 있긴 하지만.(웃음) 의사 가운데는 성형외과 개원의인 하동호 윤인대 원장이 그런 축이다. 매년 병원 문 닫고 가는 걸 보면 나도 잘 이해가 안 된다. 생업을 내팽개친 사람들 같다. 사단법인 세민얼굴기형돕기회 회원과 서울대 의대 학생들은 자원봉사로 참여하는데 기구 세척, 환자 대기 등 그야말로 잡일을 한다. 그런데도 싫은 낯을 비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정말 엄청난 정성의 소유자들이다."

_ 함께 가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닐 텐데.

"초기에는 정말 그랬다. 그래서 친한 교수나 후배 전임의와 수련의에게 거센 압력을 넣어 반강제로 끌고 간 적도 있다. 하지만 일단 내 마수에 걸려 베트남에 가면 마음이 확 바뀐다. 봉사의 행복을 알게 되는 것이다. 최근엔 10년 전에 갔는데 또 가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오랫동안 의료봉사를 하면서 우리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_ 해외 의료봉사는 한국에서의 활동이 단초가 됐다고 한다.

"인제대백병원에서 의사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된 1980년대 말 안면기형 수술을 권하면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걸 아는데도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돈이 없어서였다. 형인 백세민 당시 인제대백병원 성형외과 교수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1989년 어느 날 형이 무료 수술을 제안했?나도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 형, 아는 교수들과 함께 안면기형 무료 수술 활동을 시작했다. 비용은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모았고 친구들의 도움도 받았다. 환자 수소문은 지역 보건소나 교육청에 부탁했다. 우리는 근무일을 피해 주말마다 지방으로 가서 보건소나 교육청 강당에서 어려운 환자들을 수술해 줬다. 그런데 후원 환자 수가 500여명으로 늘면서 항구적 재원 마련이 숙제가 됐다. 그래서 만든 것이 바로 세민얼굴기형돕기회다. 1995년이었다. 처음엔 형이 회장을 맡았고 다음엔 내가 맡았다. 이 단체가 지원한 국내 환자가 4,600명이 넘는다."

_ 베트남엔 어떻게 가게 됐나.

"사단법인을 만들고 후원자들이 많아져 경제적 여유가 생기니까 한국보다 못사는 다른 나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베트남이었다. 1992년 국교도 새롭게 트여 상호 교류가 뜻이 깊었다."

_ 사회주의 국가들은 이런 도움이 질색일 텐데.

"현재 외무차관인 응웬푸빈 당시 초대 주한 베트남 대사에게 부탁했는데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이런 일을 하려면 믿을 수 있고 안정적인 파트너가 필요한데 국방부와 흔쾌히 연결해 줬다. 하노이 가면 요즘도 항상 만난다."

_ 사업을 추진할 때는 이메일도 없었을 때인데 현지와의 연락 등에 어려움은 없었나.

"팩스도 연결이 계속 끊겨 편지로만 해야 했다. 그런데 편지라는 게 한 번 가면 열흘씩 걸린다. 또 답장 받으려면 부지하세월이었다. 준비 기간만 6개월이 걸렸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_ 우즈베키스탄, 몽골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들었다.

"우즈베키스탄은 2002년 서울대병원과 의료 교류를 시작했는데 그 일환으로 나와 서울대병원팀이 2003, 2004, 2005년 의료봉사를 다녀왔다. 몽골은 양국 로터리 교류 과정에서 안면기형 어린이 돕기가 추진됐는데 땅이 넓어 변경에서 울란바토르로 옮겨 수술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그래서 서울에서 수술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2006년부터 6명씩 초청해 돕고 있다."

_ 해외 의료봉사로 만난 환자 가운데 잊혀지지 않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환자보다는 부모 생각이 많이 난다. 환자도 물론 좋아하지만 엄마들이 그렇게 운다. 좋아서 말이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_ 몽골 환자들은 비자 수속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숫자를 해 주지 못한다는데.

"한국에서도 시골 사람이 서울 와서 여권 비자 얻으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저개발국인 몽골은 더 그렇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 수속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데 항상 이 일에만 매달릴 수는 없는 형편이다."

_ 북한을 지원할 계획은 없나.

"2002년 평양에 가서 당국자를 만나 사업 추진을 제의했는데 서해교전이 터졌다. 2009년에는 개성과 평양에 들러 다시 설명하고 의견도 접근했는데 이번엔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회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뭘 하려면 일이 생기니 남북 관계를 위해 안 해야겠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_ 저개발국에서 안면기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실 안면기형 수술은 고난도 수술이다. 경제성장이 된 나라라야 발전하는 수술이다. 먹고살기 힘든 저개발국가에서는 이런 투자를 할 여유가 없다."

_ 세민얼굴기형돕기회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몽골에다 국내에서까지 사업을 하려면 소요되는 돈도 만만치 많겠다.

"베트남은 한 번 가는 데 1억2,000만원 정도 필요하다. 그 중 3분의 2가 장비 비용이다. 새것을 사서 쓰고는 남기고 오니 갈 때마다 다시 구입해야 한다. 항공료가 그 다음이다. 체제비의 경우 식사는 현지 병원 식당에서 하고 잠은 정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자기 때문에 비중이 가장 적지만 사람 수가 많으니 이 역시 만만한 액수는 아니다. 베트남 활동 예산의 대부분은 SK텔레콤이 도와주고 있다. 유한양행, 비트컴퓨터, 심여화랑 등 이런 식으로 세민얼굴기형돕기회를 후원하는 사람과 기업들이 참 많다. 고맙다는 얘기밖에 할 말이 없다. 모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묵묵히 몸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다. 또 분당서울대병원은 의료진이 의료봉사 가면 업무 공백이 생겨 힘들 텐데도 오히려 나가라고 한다."

_ 돈이 궁할 때는 없었나.

"IMF 때는 정말 힘들었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기금이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참 소중한 경험도 있었다. 당시 베트남 활동을 후원하던 SK텔레콤이 부정적으로 나올까 봐 부탁 좀 하려고 찾아갔더니 '우리 같은 큰 회사가 힘들면 개인이나 베트남은 더 고통스럽지 않겠냐'며 흔쾌히 수락했다."

_ 2008년 한국일보가 수여한 제1회 한국나눔봉사상 대상, 2009년 한국적십자박애장 은장 등 많은 상을 받았는데.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 이런 마음 때문에 베트남에서 정부 훈장을 주려 했을 때 거절한 적도 있다."

_ 사람들이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부르는 건 어떤가.

"슈바이처가 들으면 깜짝 놀라 관에서 일어날 일이다."

_ 올해 초 서울대 의대 입학식, 졸업식과 지난 6월 서울대발전기금 음악회에서 다른 교수들과 축가도 불렀다는데.

"내 노래 내가 들어도 정말 아니다. 실력 무시하고 그냥 학교 위해 한 것이다."

_ 욕심 많은 분이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철철 넘칠 것 같다.

"살아 있는 한 사랑의 나눔을 계속하고 싶다. 하늘이 내게 내린 소명에서 은퇴란 있을 수 없는 것 아닌가."

● 약력

▦1958년 부산 출생 ▦부산 동아고, 서울대 의대 졸업 ▦인제대백병원 성형외과 교수 ▦서울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 ▦세민얼굴기형돕기회 회장 ▦대한의학레이저학회 이사장 ▦미국성형외과학회 회원

■ "환자는 가족" 신념… 안면윤곽수술 권위자

백롱민 부원장은 구순ㆍ구개열 수술에서 한국 최고의 권위자로 정평이 나 있다.

구순ㆍ구개열 수술은 대개 1세 이전에 하고 성장 후 2차 변형에 대해 다시 수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백 부원장은 연부조직과 근육의 적절한 박리 및 재배치를 통해 2차 변형 발생 빈도를 현저히 감소시켰다. 병원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지만 그는 요즘도 연평균 70여건의 구순ㆍ구개열 수술을 하고 있다. 그만큼 독보적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는 얘기다.

안면윤곽 수술도 그의 주력 분야. 이 수술은 기형인 얼굴의 윤곽을 교정해 주는 수술인데, 한 가지 수술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얼굴의 기본 형태를 바꾸기 위해 그 골격이 되는 얼굴뼈를 다듬는 모든 수술을 말한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상악골, 하악골, 협골, 전두골 등 얼굴 윤곽을 수술하게 된다.

일반인들이 친숙한 광대뼈 성형수술과 턱뼈 성형수술도 이에 속하는데 이 수술법은 한국 성형외과 의사의 대부로 불리는 백세민 교수가 1980년대 초 처음 시작하고 발전시켜 전 세계에 널리 전파시킨 '1호 한류 성형수술'이다. 백세민 교수는 백 부원장의 스승이자 형이다.

백 부원장의 안면윤곽 수술은 입안이나 두피에서 절개하기 때문에 외부에 흉터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의료진이 시술할 경우 턱의 부정교합이나 안면신경 손상 등이 발생할 수 있다. 그만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수술이다.

하지만 구순ㆍ구개열 수술이나 안면윤곽 수술은 성형외과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수술은 아니다. 그런데 백 부원장은 왜 이런 분야를 택했을까. "얼굴이 남과 달라 받는 고통은 환자 스스로가 아니면 모른다. 그들은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현대판 불가촉천민이다. 부모들도 자신 때문에 자녀가 이렇게 됐다고 자학한다. 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 이 수술을 시작한 이유다."

그가 후배 의사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환자는 가족이다"는 것이다. 환자를 내 부모, 내 형제, 내 자녀처럼 여겨야 제대로 된 진료가 나온다는 얘기다. 이런 신념은 그가 이 분야를 택한 계기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는 2008년 5월 분당서울대병원 부원장 취임 이후 행정가로서의 역량도 한껏 발휘했다. 병원의 목표를 지금보다 한 단계 높여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하고 ▦7개 전문센터의 특성화 ▦국내 최고의 유비쿼터스병원 실현 ▦전국 기반 협력병원 관리체계 구축 ▦6시그마를 통한 고도 혁신 ▦교육과 연구 역량 강화 ▦고객 중심 병원 문화 구축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다. 요즘 그는 병원 신관 증축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상 11층, 지하 3층, 건축연면적 5만6,449㎡로 지어질 분당서울대병원 신관은 공사비 1.050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이다. 완공은 2012년 하반기. 암병원과 뇌신경센터가 특화돼 입주하고 476개 병상의 입원실도 추가로 조성된다.

인터뷰 분당=글 이은호 선임기자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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