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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입력
2011.07.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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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료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KBS의 모든 프로그램이 이 말을 자막으로 내보내고 있다. 요즘처럼 KBS가 수신료의 가치를 열심히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다. 이유를 모를 시청자는 없다. 한마디로 앞으로 실망스러운 KBS가 되지 않도록 수신료를 소중히 쓰겠으니 1,000원만 올려달라는 얘기다. 속이 뻔히 보인다.

KBS에게 수신료는 뭔가. 지난해 11월에 내놓은 의 정의에 따르면 '자본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는 방송의 독립과 자율, 공정과 균형의 주춧돌로서, 매체와 채널의 홍수 속에서 모두에게 꼭 필요한 정보와 건강한 감동의 원천으로서, 소외된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의견의 소통으로 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뿌리'이다.

KBS는 국민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거창하게 수신료의 가치를 설정하고 있고, 공영방송으로서 자신들이 해야 할 역할도 완벽하게 알고 있다. 수신료가 정말 그런 것이라면 그까짓 1년에 영화 한 편 보는 값보다 조금 많은 인상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독립적이고, 공정하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감동이 넘치고, 누구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KBS가 되겠다는데.

수신료는 정략의 대상 아니다

문제는 시청자들의 불신이다. 수신료 인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KBS의 다짐을 믿지 않는다. 먼저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들이 보여달라는 것과 KBS가 보여주겠다는 것은 정확히 같다. 선행조건만 정반대이다. 한쪽은 수신료를 올려주면 보여주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보여주면 올려주겠다는 것이다.'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식의 논쟁과 도청논란으로 그나마 가닥을 잡았던 수신료 인상은 기약이 없어졌다.

KBS 수신료 인상에 관한 한 정치적, 정략적, 집단이기주의적 태도가 늘 기승을 부린다. 어제 여당으로 찬성하다가도, 오늘 야당이면 반대한다. 방송이 크게 바뀌지도 않았는데 여당이었을 때는 공정했고, 야당이었을 때는 편파이다. KBS 내부구성원들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대로 멋대로 만들면 독립이고, 아니면 권력의 방송 장악이다. 모두 시청자를 내세우고 있지만, 어디에도 시청자는 없다.

그들은 시청자들까지 점점 정략적인 사고에 빠져들게 했다. 구체적 사례나 자기만족도에 대한 검증 없이 KBS 전체를 평가하고, 정치와 이념에 따라 잣대를 마구 휘두른다. 이런 상황에서 KBS가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공정과 균형, 감동의 방송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수신료 인상 여부가 선결조건도 아니다. 사회인식과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도 마치 수신료만 올려주면 KBS는 혼자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어쩌면 KBS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KBS가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목소리와 모습도 모두 TV에 담겠다고 약속한 것도 공허하다. 채널 제약상 그럴 수도 없고, 꼭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정치성, 상업성에 얽매이지 않은 고품격 프로그램을 모든 국민이 차별과 불편 없이 보고, 공감하고, 자부심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공영적'일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수신료 인상도 필요는 하다. 그러나 영국 BBC나 일본 NHK처럼 지금의 KBS 지배구조도 바꾸어 방송을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야 한다.

가치 평가는 시청자들의 몫

냉정하게 보면 수신료 1,000원 인상은 KBS를 더욱 정권의 시녀로 만드는 것도, KBS2 광고는 그대로 하니 새로 출범하는 종편을 밀어주기 위한 것도, 국민 부담을 엄청나게 가중시키는 것도 아니다. 물론 KBS 경영의 비대화에 대한 비판도 일리가 있지만, 제작비 인건비 상승에 디지털방송투자를 감안하면 무작정 '집단이기주의'로만 돌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인상에 찬성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한번쯤은 정략적 태도와, 수없이 반복 주장하는 선행조건에서 벗어나 KBS의 자막대로 시청자로서 각자'수신료의 가치'를 평가해 보자. 그 기준이 거창한 공영방송의 원칙이든, 사극 같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하나든 상관없다. 수신료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판단이야말로 시청자의 것이다. 시청자 주권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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